매일신문

생명과 평화의 길

김지하 지음/문학과 지성사 펴냄

반독재, 반유신 투사로 한국 사회 변혁 운동의 선봉에 섰던 김지하. 오랜 수인(囚人) 생활을 하다 1984년 사면 복권된 후 최제우, 최시형, 강일순 등의 민중사상에 독자적인 해석을 더해 '생명사상'이라 명명하고 생명운동에 뛰어 들면서 변혁 운동 진영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난도 받았다. 이 책은 김지하가 2003, 2004년에 해온 여러 강의와 각 매체에 발표한 기고문 등을 엮은 산문집으로 스스로 "생명사상의 총 본산"이라 부를 만큼 생명사상의 요체를 담고 있다.

저자가 바라본 지금의 세상은 대혼돈 속에 묻혀 있다. 인간 내면의 도덕적 황폐와 생태계 오염, 세계 경제의 위기, 지진, 해일을 포함한 끝없는 기상이변, 테러와 전쟁 등으로 문명에 대한 회의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 그럼 대혼돈을 헤쳐나갈 길은 과연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동아시아로 향한다. 동아시아 민중들의 다른 이름인 '시민'들은 동아시아의 전통 문화를 새롭게 해석하고 이에 기초해 자본주의 세계 질서에 상호 보완적인 호혜의 새 경제를 가꾸어 나가야 할 주역들이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보충적 이념으로서의 전원일치적 직접민주주의 정치 그리고 생명 문화에 의해 새로운 사회 질서를 창조하려는 사람들이다.

특히 저자는 이들 가운데 '붉은 악마'와 '촛불 세대'를 주목하고 있다. 새로운 문화의 길, 새로운 문화 코드는 새 세대만이 성취할 수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 저자는 출판 간담회에서 "이들의 개인주의에서는 각각의 개체성을 존중하는 자세와 권위적인 지도자를 배척하고 모두가 지도자가 되는 자율성이 읽힌다. 이것이야말로 이상적인 자유와 분권의 모습이 아닌가. 집단을 위한 희생만큼이나 개인주의도 존중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 속에는 우주의 전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또 생명과 평화의 바탕 위에 붉은 악마와 촛불 세대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로 남아시아 지진과 같은 전 인류적 재앙, 인간 내면의 황폐, 전쟁과 테러, 신자유주의로의 세계 질서 재편, 생태계 오염 등을 꼽았다.

저자는 지금까지 남성이 주도해 온 문명이 전 세계적으로 파괴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고 여성들의 역할과 그들이 주도해 나갈 미래에 대한 전망도 내놓고 있다. 모심의 극치인 포태(胞胎) 능력을 지닌 여성들의 생명 능력이 생명 자체의 신화와 과학을 바꾸고 생성의 세계 전체를 새롭게 전개할 수 있으며 현재 인류와 세계에 결핍되어 있는 호혜와 공경의 실천 능력을 증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와 함께 저자는 이들이 견지해야 할 철학을 찾기 위해 고대 상고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생명과 평화의 길은 우리 전통 안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저자는 민족을 무시하거나 세계를 무시하는 양 극단의 사상을 다 경계해야 하며 1만4천 년 전만이 아니라 6천 년 전, 3천 년 전, 그리고 19세기 후천개벽 사상 안에서도 우리가 재창조해야 할 전환기의 패러다임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시아 고대 문예 부흥을 과감하게 일으켜야 하며 이것은 퇴행이나 복고가 아니라 옛날로 들어가 새로움으로 나오는 필요와 자연에 의해 다시 진화하는 재진화임을 표명하고 있다. 문학과 지성사 펴냄, 364쪽, 1만1천 원.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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