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豹庵과 秋史

조선시대 후기와 말기의 화단에 영향을 끼친 인물로는 표암 강세황과 추사 김정희를 들 수가 있다.

우선 시·서·화 3절로서 서화가, 평론가, 감식가로 잘 알려진 강세황은 조선후기 화가들 가운데 가장 왕성한 교류관계를 유지하였다.

정선을 비롯해 조영석·김두량·이인상·심사정·허필·강희안·김홍도·김응환·이인문·최북·김용행·신위 등이 그와 교류했거나 화원으로 천거 받는 등 영향력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강세황과 위로는 37세, 아래로는 56세까지 나이 차이가 난다.

이처럼 폭넓은 인간관계는 당시 화단에서 '예원(藝園)의 총사(總師)'로 불릴 만큼 차지하는 그의 비중 또한 크기 때문이다.

그는 서화가·미술행정가로서의 능력과 함께 사대부 화가나 화원과 직접적이거나 화평을 통한 폭 넓고 다각적인 교유관계를 유지하였다.

한편 조선말기의 김정희는 사대부로서의 위치와 서단과 화단의 절대적인 존재로서 청대의 학자와 서화가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중국을 흠모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으로 후기화풍을 쇄락시키고 중국 것을 맹종하는 풍토로 만들어 버렸다.

그의 이러한 영향은 조희룡·김수철·김한철·허련·전기·박인석·유숙·조중묵 등을 위시한 중인 출신 여기(餘技) 화가 및 화원들에게까지 미쳤으며, 그들은 김정희에게 그림을 그려 바치거나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대원군 이하응·신관호·권돈인을 비롯한 당대의 왕공(王公) 사대부출신 화가들에게도 영향이 미쳐, 이 시대 화단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군림하였다.

이 두 사람은 요즘으로 말하자면 화단에 절대 공헌한 인물들이다.

작품의 성격이나 질을 떠나 화원을 천거하거나 외국화풍을 전수하는 등 작품활동을 돕거나 평을 하고 지식을 나누는 인간적인 공감대로 늘 화단의 중심에 있었다.

그렇기에 이 두 사람은 선후배는 물론 화단의 모든 이로부터 절대적 추앙을 받았던 것이다.

오늘날로 치자면 '미술협회 회장' 정도의 세도가인 이들의 행적은 미술협회 지부장 선거를 앞둔 우리들에게 자칫 잊기 쉬운 아름다운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화가·미술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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