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대구의 문인을 주인공으로 한 실명소설이 문단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작가 이수남씨가 '향토문학연구' 제7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후박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 이 소설에는 대구문인협회장을 지낸 시인 도광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드문 일일 뿐더러 내용이 너무도 리얼하다.
작가의 표현대로 '곧 부화될 문학을 품은 젊음과 열정으로 새벽달이 뜰 때까지 울퉁불퉁 마셔대던' 문학청년 시절부터 두 사람은 함께 지역 문단을 지켜온 사이라 스토리가 사실적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교과서에 나오는 정비석의 '산정무한'을 쉼표 하나 빼먹지 않고 줄줄 외우고, 정석모·박목월·박훈산·전상렬의 시를 막힘 없이 읊조리는 문인이다.
도 시인과 통음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정경을 떠올린다.
술이 거나하면 이따금씩 흘러나오는 애조띤 노랫가락은 더욱 시적이다.
작가는 "시는 존재의 한순간을 잊지 않는 절박한 심정의 표현이자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의 표현"이라는 도 시인의 말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소설 속에는 대구의 웬만한 문인이라면 한두 자락의 추억쯤은 남겼을 법한 단골술집도 숱하게 등장한다.
주인공이 쌀을 맡기고 마시던 아카데미 극장 뒤 '옥이집', 쌀막걸리의 추억이 서린 '쉬어가는 집', 생맥주집 '가보세'와 주인이 일본 여자였던 '새집', 향촌동의 '고구마집'과 지금도 가끔씩 찾는 대구문화예술회관 건너편의 '토담' 등.
작가는 도광의의 명정(酩酊) 40년을 "술이 와촌의 동강 강물처럼 흘러 시와 삶을 흥건히 적셨다"고 표현했다.
경산 와촌은 시인의 고향이다.
경향의 숱한 문인들도 주인공과 더불어 낭만의 공간에 출연했다.
'지도 꾸부정하게 키 크고 나도 그렇고,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것도 나와 같고, 월급으로 친구 술 사주기 좋아하는 도광의가 나하고 어찌 그리 비슷한지….' 주인공이 교직을 마무리한 효성여고 시절 같이 근무했던 문인 서정호와의 일화도 리얼하게 되살렸다.
김동리 선생과의 특별한 관계도 소개하고 있다.
'목우(木雨)'라는 호를 준 사람도 바로 김동리였다.
'후박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라는 뜻의 호를 작가가 소설 제목으로 인용한 연유를 알 만하다.
지금도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권기호 시인과의 인연과 얼마 전 타계한 김춘수 시인과의 사제간의 정, 제자인 안도현 시인과의 별난 추억도 소개했다.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어떤 시인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의리 있으며, 술에 살고 시에 죽는 인물'이다.
제자들이 손으로 엮은 '화갑기념문집' 출판기념식장 풍경과 '갑골길' 이후 20여 년 만에 출간한 두 번째 시집 '그리운 남풍' 출판기념회 장면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술만 먹는 도광의'가 아니라 '사람 좋아하고 제자들 제대로 만든' 도광의는 실제 대구문인협회장을 두 번 역임했고 교직에 있으면서 40여명의 유명 시인을 제자로 배출한 주인공. 요즘에는 '우슬'이라는 애견과 산에 오르며 건강과 시를 찾고 이따금씩 장단 맞는 문인들과 술잔을 나누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술과 시밖에 안했다"고 단호히 말할 수 있는 시인의 문학과 삶의 이야기는 그래서 196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대구문단사의 한 단편이기도 하다.
무대만 대구로 옮긴다면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된 EBS TV '명동백작'의 한 장면과도 다를바 없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