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에서 나고 자라 농사를 짓다가 서울로 이사한 ㄱ씨가 낳은 아들의 고향은 서울일까 칠곡일까?
이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른 듯하다.
국어대사전을 펴봐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금성판 국어대사전은 고향(故鄕)을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 또는 '자기 조상이 오래 누리어 살던 곳'으로 정의했다.
이대로라면 ㄱ씨는 칠곡과 서울 모두 고향일 수 있다.
얼마전 만난 한 택시기사는 고향을 국어대사전과 달리 규정했다.
초로의 그 택시기사는 '어린시절 추억이 있는 곳'을 고향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참 어려운 낱말이다.
왜 갑작스레 고향을 갖고 넋두리하느냐 의아해 할 수 있다.
하지만 경향각지에서 올라온 사람이 모여 사는 서울에서 고향이 갖는 무게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영등포에 있는 포항물회집, 광화문에 있는 안동국시집에 가 보면 여기저기서 경상도 사투리가 들린다.
입맛이 맞아서 일 수도 있고 고향이 그리운 본능으로 찾았을 수도 있다.
고향은 편안함이고 추억이다.
고향은 언제나 안기고픈 어머니의 품과 같다.
이런 고향이 한때 천덕꾸러기 신세로 내몰렸다.
김영삼 정권 시절 '지역주의 타파'가 화두가 됐을 때 고향을 공직자의 인사기록카드에서 삭제토록 했다.
언론도 고위 공직자 인사가 단행되면 가능한 한 고향을 거론해 기사를 작성하지 않기로 결의하기도 했다.
혈연 지연 학연을 따지는 것이 한국사회의 병폐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출생지를 인사기록카드에서 제외한 일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치하다.
그렇게 한다고 지역주의가 없어질 리 없다.
일부 부처는 지금도 인사카드에 출생지를 기록하지 않는다.
경찰청이 그렇다.
반면 법원 검찰은 출생지는 물론 출신고교별로 판검사들을 자세히 분류해 놓고 있다.
그렇다면 경찰은 '지연'에서 자유롭고 법원 검찰은 '지연' '학연'에 매몰돼 있을까. 한마디로 아니올시다다.
대구-경북을 떠나 수도권에 사는 출향인사의 수가 400만명을 넘는다.
이들을 취재해보면 무척 반가워한다.
'고향까마귀'라고 대번에 말을 놓는 사람들도 많다.
대화가 계속되면서 경상도 사투리가 억세어진다.
편안해서 그럴 게다.
그런데 공직자들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곧잘 받는다.
제발 고향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매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실인지 모르나 김영삼 김대중정권 시절 대구-경북 출신 공직자들이 대거 한직으로 내몰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고향'은 '인사 설움'이자 '인사 공포'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고향 기피증을 보이는 공직자들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고향은 쉬쉬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품이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출신의 실력있는 공직자들은 정권에 구애받지 않고 정부 요직에서 당당하게 활동했다.
참여정부에선 대구-경북 출신이 더 활발한 듯하다.
출향 공직자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잘 되면 내 탓 잘못 되면 고향 탓'을 해서는 안된다.최재왕 정치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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