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영 대법원장이 19일 신임 대법관 제청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 지명작업을 동시에 끝낸 것은 인사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조직의 안정을 바라는 법원 내부의 기대를 상당부분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그러나 최 대법원장이 항간의 예측을 뒤엎고 헌재 재판관 후임까지 지명한 데는 향후 헌재 재판관 지명문제를 둘러싼 법원 안팎의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곱지않은 시선도 있다.
▲과거로 회귀한 대법관 인선=이번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기수와 서열에 무게를 두고 현직 법관 중에서 대법관을 발탁해 오던 법원의 오랜 인사관행이 재연됐다는 점이다.
대법원이 과거 회귀 양상을 보인 것은 참여정부 들어 개혁 차원에서 기수와 서열 관행을 과감하게 파기했다 생긴 후유증을 감안한 조치로 판단된다.
재작년 8월 대법관 제청자문위의 파행적 운영에서 촉발된 소장판사들의 연판장 사태에서 보듯 대법관·헌재 재판관 선정방식과 관련해 제기되는 잡음을 미연에 막자는 의도를 내보인 것이다.
대법원은 2003년 전효숙 헌재재판관 지명과 2004년 김영란 대법관 제청을 통해 기수 위주의 인선을 지양하고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이 반영되도록 대법원과 헌재를 구성하자는 외부의 희망을 최대한 수용했다.
그러나 이는 법원 입장에서 볼 때 수십 년간 이어진 인사관행을 깨뜨리는 것이어서 내부적 불만이 적지 않았다.
작년 김영란 대법관 제청과정에서는 강병섭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사표를 내는 등 노골적인 반감이 표출됐다.
이에 따라 인사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법원 조직의 안정을 기하며 대법관 제청에 탈락한 선배·동료 고위법관의 동시퇴진을 막기 위해서는 이번 대법관 제청만큼은 기수를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원 내부에서 중론이었다.
▲헌재 재판관 지명 논란 = 이번 인선의 또 다른 특징은 신임 대법관 제청과 함께 올 3월13일 퇴임하는 김영일 헌재 재판관 후임까지 동시에 지명됐다는 점이다.
재작년 8월 임명된 전효숙 재판관의 경우 대법원이 선임 재판관 임기만료 6일 전에야 피지명자를 밝혔던 전례에 비춰 이번에는 후임자 지명이 상대적으로 매우 빨라진 것이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속내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우선 내달 14일자로 이뤄질 법원장·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 고위법관 인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헌재 재판관 후임자 지명이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헌재 재판관 지명이 고위법관 인사 이후로 미뤄질 경우 대법원은 헌재 재판관지명 이후 또다시 고위법관 인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헌재 재판관 지명문제를 놓고 법원 안팎에서 제기될 수도 있는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포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최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 이후에 헌재 재판관을 지명할 경우 시민단체 등에서는 헌재 구성의 다양성을 요구하며 기수에 얽매이지 않은 진보적 인사의 지명을 요구할 것이 뻔한 상황을 감안한 조치인 셈이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이번에 퇴임하는 헌재 재판관의 후임자 지명권이 대법원장에게 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며 "그러나 그동안 아무런 공론화 과정도 없다가 돌연 재판관을 지명한 것은 비판의 소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대법관 대대적 교체 시동 = 이번 대법관 제청이 관심을 모은 또 다른 이유는 내년까지 대대적으로 교체되는 대법관 인사의 신호탄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내달 26일 퇴임하는 변재승 대법관을 필두로 9월 최 대법원장, 10월 유지담·윤재식·이용우 대법관, 11월 배기원 대법관 등 올해에만 6명이, 내년에는 7월 한 달에만 강신욱·이규홍·이강국·손지열·박재윤 대법관 등 5명이 퇴임한다.
내년까지 대법원장을 포함, 14명의 대법관 중 11명이 교체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법관·헌재 재판관 인선을 놓고 앞으로 법원 인사가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도 내놓고 있지만 속단하긴 힘들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대법관 제청권을 갖고 있는 최 대법원장이 올 9월 퇴임하고 후임 대법원장 임명권은 노무현 대통령이 갖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런 관측은 기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정권 출범 이후 사법개혁을 누누이 강조해 온 점에 비춰 내년 말까지 9명의 대법관에 대한 제청권을 행사할 후임 대법원장으로는 참여정부의 의중을 상당부분 반영할 수 있는 인사를 선택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유력하다.
또, 대법원은 사법개혁위원회에서 고법 상고부를 설치하는 대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을 처리하는 정책법원으로서 기능을 강화한다는 주장을 관철시켰다는 점에서도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는 거역하기 어려운 대세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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