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우리는 학생인가

중국의 대문호 왕멍(王蒙)은 70여 년 동안 혁명가, 문학가, 고급 정부 관리로 빛나게 살아왔지만 자신의 신분을 "나는 학생이다"라고 규정했다. 같은 이름의 저서에서 "학생은 나의 신분만이 아니고, 나의 세계관이자 인생관이며, 성격과 감정의 세계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단어"라고 설명한다.

그는 배움에 대해 어떤 조건에서도 할 수 있고, 태어날 때부터 시작해서 생명이 끝날 때에야 끝나는 사람의 진정한 재능이며, 모든 것을 포괄한다고 정의했다. "어떤 자가 당신에게 학습을 불허한다고 할 때, 이것은 당신에게 '인간의 악을 가르치는 교과서'를 넘겨준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도 주저 않는다.

최근 서울의 한 고교에서 일어난 일련의 부정 사건은 왕멍이 던지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곱씹게 한다. 담임 교사가 현직 검사 아들의 시험 답안지를 대필하고, 학교 부근 오피스텔에서 불법 과외를 하고, 과외 알선까지 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선정성 경쟁에 빠져든 언론들은 학교와 오피스텔, 사이버 공간 구석구석까지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며 갖가지 의혹과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이를 보는 국민들은 "가장 깨끗해야 할 교사가 어떻게 저런 일을…"이라거나 "드러난 것은 학교 비리의 일부일 뿐"이라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면서도 각기 침통한 표정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말이 빠른 일부 식자들은 불과 얼마 전 내신 비중을 높이면 고교 교육 정상화가 기대된다고 칭찬하던 2008학년도 대입 제도에 대해 불신과 회의의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쯤 되면 단골로 거론되는 게 우리 교육계의 묵은 병인 성적지상주의와 황금만능주의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보면 해당 학부모나 교사들은 또다른 심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바로 '진정한 학습의 기회를 막아 악을 가르치는 교과서를 넘겨준' 혐의다. 그 학생뿐만 아니라 뉴스를 통해 이를 알게 된 우리나라 모든 학생들에게 이를 퍼뜨렸다는 중대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국민 모두는 인간이 평생을 학습해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불리는 동안만 어떻게든 좋은 점수를 받으면 된다는 점을 중시하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식들에게, 조카에게, 제자에게 은연중 이를 가르치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은 책 속의 지식이 가르치는 것보다 주위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책 속의 지식을 바탕으로 하되 경험과 생활을 통해 실천하면서 깨우치고 변화한다. 그렇다면 학부모가, 교사가, 선배가 진정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자명해진다.

"최정상에 도달할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는 반드시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학생이지만 최우수 학생은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학생이라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왕멍의 이 감탄을 한번쯤 새겨볼 일이다.

김재경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