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청소년들이 차가운 겨울 밤거리를 헤매고 있다. 이 아이들은 가정과 사회의 외면 속에 그들만의 생존방식을 고집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거리를 헤매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예비범죄자로 여겨 삐딱하게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들의 이야기를 두 차례로 나눠 들어본다
지난 19일 새벽 1시쯤 대구시 중구 동성로의 한 PC방 앞에서 만난 인석(가명·12)이는 낯선 사람이 말을 건네는 것을 무척 경계했다. 아직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인석이가 집을 나와 거리에서 생활한 지는 벌써 2년이 넘었다.
하루도 술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아버지, 그리고 집을 나가버린 어머니. 인석이는 아버지의 매질을 견디다 못해 학교 생활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집을 뛰쳐나왔다. 한창 재롱을 떨 나이지만 이미 '인생'을 말할 만큼 웃자라 버렸다.
"가끔 구걸도 하지만 주로 또래 아이들의 돈을 뺏거나 술 취한 아저씨들을 부축해주는 척하면서 지갑을 슬쩍하는 경우가 많아요. 찜질방, PC방에서 밤을 샐 때도 있고 가출한 여자아이와 함께 여관에서 잘 때도 있죠. 요즘은 날씨가 추워 함께 가출한 친구와 여인숙에서 지냅니다."
인석이는 남의 돈을 뺏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말끝마다 욕설이 섞였고, 음식을 먹을 때도 손으로 집어먹었다. 도심의 어둠을 배회하는 늑대 소년 같았다. 그러면서도 늘 겁에 질려 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금세 뒤쫓아 올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사회에 대한 적개심으로 바뀌어 있다.
2002년 여름 집을 나와 최근까지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다 몸이 안좋아 쉬고 있다는 미진이(17·여)는 지난해 말 부산에서 올라왔다. 먹고 살기 위해 남자 손님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고, 또 '2차'도 나가봤다. 제법 짙은 화장을 했지만 여전히 앳된 모습이 남아 있는 미진이는 '꿈', '희망'이란 말을 가장 싫어한다. 사춘기를 잃어버린 그는 10년 세월을 건너뛰어 사는 것 같다.
"경북 어느 도시에서 티켓 다방에 머문 적도 있어요. 지금은 몸을 판 일을 후회하지만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여자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미진이는 아이들이 돈을 벌어도 숙박비와 식비 등 기본적 생활비 외엔 유흥비로 탕진해 버리기 때문에 돈을 모으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고 했다.
미진이는 채팅으로 어른들을 만나고 여관에 들락거리는 일이 죽을 만큼 싫다. 다른 아르바이트는 돈이 너무 적고 미성년자라는 걸 알면 돈을 떼이기 일쑤여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대구에서 지난해 가출한 청소년은 모두 695명. 2003년의 514명에 비해 35%가량 늘었다. 경찰은 이들 대부분이 거리를 배회하며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틴스타 성교육센터 이호숙 소장은 "성매매를 경험한 가출소녀들은 '왜 성매매를 하면 안 되는지'조차 모른다"며 "벌써 여자아이들이 '남자는 못 믿을 존재'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대구시 손일윤 청소년담당은 "이들에게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가정과 학교가 주지 못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곳은 현재로선 청소년 쉼터밖에 없다"고 했다.
대구시는 1억 원을 들여 오는 5월쯤 가출 청소년들를 위한 상담, 의료·생활지원과 보호기관 알선 등을 담당할 '드롭 인'(Drop-In) 센터를 설치, 운영할 예정이다.
채정민기자 cwolf@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트럼프, 중동상황으로 조기 귀국"…한미정상회담 불발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