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공단의 지난해 수출액이 몇 백억 달러, 생산액 수 십조 원이라고 발표되지만 우리 같은 서민은 솔직히 하루 벌어 밥값, 담뱃값 빼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더."
구미공단의 한 섬유업체에 다니다 지난해 구조조정으로 퇴사해 택시 핸들을 잡은 박동호(45)씨.
그는 "오히려 적자여서 마누라와 자식들 볼 면목도 없다 카이. 정말 더 이상 버티기 힘듭니더"라며 울상을 짓는다.
수출도시로서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살기가 나은 것으로 여겨져 온 구미공단. 최근 들어 구미공단의 총체적인 경제지표는 개선되고 있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더욱 냉랭해지고 있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가 완전히 서로 다른 양상이다.
겉으로 드러난 지표로는 분명 호황이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사이의 '부익부 빈익빈' 경기 양극화 현상마저 심각하다.
대다수 서민들 사이에서는 IMF 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오래다.
지난해 구미공단은 역대 최고치인 272억7800만 달러(구미세관 통관기준) 어치를 수출했다.
휴대전화와 액정표시장치(LCD) 등 첨단 디지털전자제품 등의 수출 호조 덕분이다.
이는 유난히 국내 경제가 어려웠던 2003년 대비해 33%나 증가한 수치.
무역수지 흑자도 160억6200만 달러를 기록해 전국 무역수지 흑자 총액 297억5000만 달러의 절반이 넘는 54%를 차지했다.
지난해 구미공단의 산업생산액은 47조5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
지난 10년간 산업생산은 연평균 15%, 수출은 연 20%의 성장세를 나타냈다.
삼성전자 구미사업장(휴대전화)의 경우 지난해 애니콜 8천여만대를 생산, 모두 17조7천500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이는 삼성전자의 전체 정보통신부문 매출액(18조9천400억 원)의 94%에 이른다.
또 전체 매출액 대비 85%인 125억 달러 어치를 해외에 수출했다.
이 회사의 애니콜 생산부서인 정보통신 무선사업부 직원들은 지난 연말특별상여금으로 기본급 500%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받았다.
또 기본급의 150% 등 생산성 격려금(PI)과 연봉의 최고 50%를 주는 초과이익분배금(PS)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휴대전화,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반도체, 디지털TV 등의 수요증가로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속 빈 강정 꼴이라는 중소업체 항변이 쏟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잘나가는' 일부 대기업은 넘쳐나는 돈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대다수 업종과 기업들은 오히려 연쇄도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 더욱이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경기호황의 이득은커녕 오히려 판매단가 인하를 강요받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대기업에 전자부품을 납품한다는 ㄱ사 김동욱(52·가명)씨는 "지난해 4번씩이나 단가인하 협상을 벌인데 이어 새해 들어서자마자 원도급업체 측에서 단가인하를 요구해 '울며 겨자먹기'로 단가를 하향조정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ㅅ사 정학규(38·가명)씨 역시 "지난해 원청업체의 판매가 늘어나 전체 납품규모는 30%가량 늘었으나 경상경비를 빼고나면 적자"라며 "이런 현상은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구미공단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겪는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대기업의 단가인하 압력은 고스란히 직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임금의 경우 대기업과 비교해 절반 수준 밖에 안돼 하청 중소업체 직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원청업체의 눈 밖에 날까봐 하소연도 못하는 처지다.
구미상의 관계자는 "휴대전화 디지털 TV 등을 생산하는 대기업이 구미공단 전체 생산·수출량의 70, 80%를 차지하고 있다"며 "이들 대기업의 호황에 대다수 하청업체를 비롯한 중소기업체의 어려움은 사실상 가려져 있다"고 말했다.
구미공단에 주력업종인 섬유 역시 유가인상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중국의 추격에 따른 완제품 가격 인하 등으로 사실상 한계수준을 넘어섰다.
더욱이 판매난과 재고난으로 극도의 자금압박을 받고 있다.
중견 섬유업체의 한 임원은 "이제 섬유는 돌리면 돌릴수록 손해를 보고 있다"면서 "동종업계 대다수가 화의, 워크아웃 등으로 이자를 감면받은 업체들은 차액만큼 덤핑을 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거래질서가 계속 이어질 경우 얼마가지 못해 공멸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마디로 빛좋은 개살구지요. 몇몇 대기업 직원만 살판났지 우리 같은 서민은 지금 혹한을 맞고 있는 중입니다.
"
구미·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사진: 구미공단은 요즘 대기업과 중소기업체 들간에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섬유업체 등 중소기업들(사진 위)은 가격덤핑과 원가인하 등으로 경영압박을 받고 전자업계 등 일부 대기업들은 특별상여금 지급 등으로 공단경기가 양극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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