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꾸준히 듣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해외 어학연수다, 영어캠프다 해서 영어 교육열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학원조차 마음대로 못 다니는 저소득 가정의 학생들에게는 남의 집 이야기일 뿐이다.
이 학생들이 처음으로 영어 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 17일부터 대구교육청 주관으로 경산 대경대에서 열린 동계 영어캠프에 저소득층 자녀 20명이 특별 초청된 것. 4박5일 동안 원어민 교사, 200여 명의 친구들과 함께 색다른 체험을 한 어린이들의 소감을 들어봤다.
△어려운 출발
이번 교육청 캠프는 참가비가 18만 원이다. 저소득층 자녀들로서는 엄두를 내기 힘들다. 교육청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참가 신청을 한 200명의 학생 외에 20명을 무료로 초청했지만, 선발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껴 오히려 참가하지 않겠다고 거절한 사례가 많았다는 것.
할머니와 둘이 사는 동원(가명'12)군은 캠프 시작 당일 갑작스레 '가기 싫다'고 버텼다. 운영진이 직접 찾아갔더니 챙길 것도 마땅찮아 외투에서부터 속옷, 세면도구까지 모두 마련해 주기까지 했다. 동원군은 "캠프에 와 봤자 별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며 "영어도 제대로 못 하는데 캠프는 와서 뭐하겠냐"라며 퉁명스레 말했다.
나머지 학생들도 사정은 대부분 비슷했다. 캠프를 간다는 사실에 신나 하면서도 영어로 말을 해야 한다는 것과 혹시나 친구들과의 격차가 드러나 창피하지 않을까 걱정돼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던 것. 그래도 주연(가명'11)양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잠을 자고 생활하다보니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영어와 친구 되기
학생들은 레벨 테스트를 거쳐 반 배정을 받고 수업을 시작했다. 하루 영어 수업은 6시간. 오전 3시간과 오후 3시간 원어민 교사와 수업을 했다. 초등학생 캠프인 만큼 수업은 '놀이' 중심으로 구성됐다. 빙고게임을 통해 어휘력을 늘리거나, 그리고 만드는 과정 속에서 영어를 몸에 익힐 수 있도록 한 것. 대경대 항공학과 학생들의 실습장인 '모의 입국장'을 통해 외국에 입국할 때의 절차와 대화법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점심식사 후 1시간은 체육, 저녁식사 후 2시간은 힙합댄스'재즈댄스'택견 등을 배우며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체력도 기르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주민(가명'11)양은 "처음에는 원어민 선생님이 하는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해 친구들이 웃기도 했지만 이제는 대강의 단어 정도는 알아듣는 수준이 됐다"며 "두려운 마음을 버리고 선생님의 말에 집중하니 아는 단어가 꽤 많이 들렸다"라고 했다.
수경(가명'11)양은 새롭게 케리(kerry)라는 영어 이름을 지었다고 자랑했다. 한번도 외국인과 만난 적이 없어 영어 이름이 없었는데 이번 캠프에서 선생님이 수경이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수경양은 "같은 반에는 원어민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도 척척 잘 하고 쉬는 시간에도 항상 원어민 선생님과 즐겁게 떠들며 노는 학생들이 많아 너무 부러웠다"라며 "그래도 한국인 보조 선생님이 늘 옆에서 해석을 도와주는 데다 원어민 선생님도 친절하게 말을 자주 걸어 줘 기분이 좋았다"라고 했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할래요
동원이, 주민이, 수경이는 이번 겨울 캠프가 끝나면 어떻게 영어 공부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에 다니고 싶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학원 수강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두들 이번 캠프를 통해 예전보다는 영어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섰다고 했다.
주민이는 "캠프에 와서 외국인에 대한 무서움이 없어지고 틀려도 영어로 자꾸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라며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에 다닐 수는 없지만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고 언니에게도 열심히 배워야겠다"라고 했다. 수경이도 "앞으로는 외국인을 만나면 피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됐다"라며 "여름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하면 엄마랑 야구장에 가서 외국인 선수에게 꼭 인사를 하고 사인을 해 달라고 영어로 말할 것"이라고 했다.
윤형배 대구교육청 장학사는 "일회성 캠프를 통해 영어의 많은 것을 알게 할 수는 없지만 영어 공부에 대한 흥미를 깨우쳐 주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크다고 본다"라며 "올 상반기 문을 열게 될 국제이해교육센터 프로그램과 매 학기 방학 때마다 열리게 될 캠프를 통해 더 많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참가 기회를 주도록 배려하겠다"라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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