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신비주의 문학의 대표적 작가 구스타프 마이링크의 '골렘'은 '풍문(風聞)'을 다룬 소설이다. 세상 곳곳을 끊임없이 떠돌아 다니는 풍문에 대한 의구심, 풍문의 위력, 공포 등을 담고 있다. 소설 속의 한 구절은 풍문의 덧없음과 무책임함을 잘 말해준다. "사람들은 평소엔 골렘을 전설로 생각하지. 그러다가 어느 날 거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면 골렘이 갑자기 다시 살아나는 거야. 그러면 사람들은 누구나 한동안 골렘 이야기를 한다네. 그렇게 해서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거야. 그러다 보면 그 소문은 마침내 그 황당무계함 때문에 오히려 사그라지고 마는 거지."
▲ 조선시대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은 관원의 기강 확립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거나 법을 어긴 관원을 탄핵(彈劾)을 통해 그 직위에서 물러나게 하는 예가 종종 있었다. 문제는 확인절차나 확실한 근거 없이 소문만으로 단죄하는 풍문탄핵도 더러 있었다는 것. 해당 관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직무수행이 중지됐고 복귀를 위해서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했으므로 풍문탄핵 역시 치명타가 됐다. 이는 또한 정적 제거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호사(好事)는 문밖을 나서지 않고 악사(惡事)는 천리를 간다'는 옛말처럼 좋은 일은 별로 알려지지않지만 나쁜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의혹에서 의혹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인터넷시대의 그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퍼져간다. 끊임없이 부풀려져서 결국 풍선터지듯 터져버리거나 연기처럼 사라지게 된다.
▲국내 연예계 최대 스캔들로 꼽힐만한 세칭 '연예인 X파일' 은 사실의 진위를 떠나 우리 사회의 고질 인 '쑥덕쑥덕병'이 극대화된 한 사례다. 대중들에겐 연예인에 대한 환상이 여지없이 깨어졌고, 연예인들은 유출된 풍문을 마구 전파시킨 대중들의 관음적 호기심에 절망하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역 구내에서 노숙자 2명이 숨진채 발견되자 철도공안원들에 의한 폭행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급기야 분노한 노숙자들의 소동으로 23일 한동안 역 업무가 마비됐다. 철도공안에 대한 쌓인 감정이 풍문을 타고 폭발한 사건이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발없는 풍문이나 소문이 언제라도 우리 사회를 어지럽힐 수 있음을 새삼 확인케 해준다.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가 개구리에겐 죽음을 안겨줄 수도 있다. '소문(풍문)은 강물과 같아서 그 원천은 보잘것 없지만 하류로 내려가면 엄청나게 넓어진다'는 옛말을 한번쯤 되새겨볼 일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트럼프, 중동상황으로 조기 귀국"…한미정상회담 불발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