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팬들에게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기다려지는 것은 단순히 연휴이기 때문은 아니다.
한해 기대작들이 대거 스크린에 걸리는 극장가 최대의 대목이기 때문. 다가오는 설 연휴에는 어떤 영화들이 영화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까.
일단 한국영화가 먼저 웃었다.
영화예매사이트 맥스무비가 최근 3천271명의 네티즌을 대상으로 '설 연휴 때 가장 보고 싶은 영화는?'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공공의 적2'와 '말아톤'이 근소한 차이로 1위와 2위를 나눠 가진 것. 이들 기대작들이 나란히 극장가에 모습을 드러내는 27일은 그동안 침체를 겪고 있는 한국영화의 부진탈출 'D-day'인 셈이다.
◇공공의 적2
"전편이 재미있었으니 속편도 보고 싶다.
" 전편의 흥행성공으로 속편을 제작하는 모든 감독들에게 이 말은 가장 섬뜩하게 들릴 터이다.
그만큼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이 바닥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베테랑이라면, 더욱이 우리 영화사상 최초로 1천만 관객시대를 열어젖힌 스타감독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을까.
거기에서의 기대로 출발하는 '공공의 적2'(강우석 감독)는 경찰에서 검찰로 배경을 바꾸고, 전편의 존속살해범을 대신해 이번엔 비리사학재단 이사장을 공공의 적으로 내세웠다.
영화는 강력부 검사 강철중(설경구)과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사학재단 한상우(정준호)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에 사활을 건다.
속편의 가장 큰 특징은 아기자기한 드라마이다.
확실히 웃길 때는 웃기고,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리게 하는 등 재미를 곳곳에 배치했다.
전하려는 메시지도, 공공의 적에 대한 대상도 분명해졌다.
게다가 허름한 점퍼를 벗어 던지고 정장으로 갈아입었지만 여전히 강철중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허전하다.
한층 세련되어진 화면과 탄탄해진 드라마를 가지고 있지만, 영화는 긴 러닝타임(148분)만큼이나 축 늘어져 보인다.
전편을 장악했던 강렬한 분노가 사라졌다.
존속살해범에 대해 강철중 형사가 느꼈던 분노, 그것을 모른 채 살아왔던 소시민적인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서민적 캐릭터에만 전념했던 설경구가 난생 처음 맡은 엘리트 검사 역할이 낯설어서일까. 아니면 코믹류에만 익숙해 있던 정준호의 악역 변신이 실패한 것일까.
설경구와 정준호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다만, 강철중 검사와 관객들이 느끼는 분노를 극중 무수한 코믹 대사와 공공의 적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 때문에 폭발시키지 못했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재미있으면서도 뚜렷한 메시지를 동시에 제공하기에 두 달 남짓한 촬영기간은 턱없이 부족했을 터. 무대인사에서 "맘에 안 들더라도 두 달 찍은 것치곤 재미있을 것이다"라는 강 감독의 발언이 무척 야속하게 들리는 이유다
전편을 의식하지 않는 관객이라면 '공공의 적2'는 재미있고 볼 만한 영화다.
또 철중과 상우의 어린 시절 장면에서는 김상진 감독의 액션을, 오토바이 추격신에서는 '썸'에서 보여준 장윤현 감독만의 도로 추격 액션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볼거리.
그러나 '말아톤'이 기대하지 않았지만 기대 이상의 감동을 얻을 수 있다면, 정작 기대를 걸었던 '공공의 적2'는 오히려 기대 이하의 실망을 안긴 영화가 될 듯하다.
상영시간 148분, 15세 이상 관람가.
◇말아톤
간만에 맞아보는 단비 같은 영화였다.
'말아톤'(정윤철 감독)은 최근 '무조건 스케일을 키우고 보자'는 식의 심각한 병에 걸린 한국영화계에 시사하는 바가 많은 영화다.
"아프리카 세렌케티는 얼마 남지 않은 야생동물들의 천국입니다.
이곳에서 초식동물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 '동물의 왕국'이라는 한 TV프로그램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요즘 들어 더욱 블록버스터의 싸움으로 묘사되는 육식동물 같은 우리 영화판에서 보기 드물게 '초식동물들의 낙원'을 꿈꾸는 식물성 영화다.
폭력·섹스 같은 과도한 선정성, 거대한 자본력, 화려한 스케일 등이 필수 흥행요소인 듯 인식되고 있는 영화들 속에서 이 영화가 가진 식물성의 힘은 단연 돋보인다.
'말아톤'은 스무 살 청년이지만 정신연령이 다섯 살인 한 자폐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포츠영화이다.
자폐증을 앓는 청년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며 감동을 안긴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여기까지 놓고 보면 무척 진부하기 그지없다.
그동안 '포레스트 검프'나 '레인맨', '아이 엠 샘' 등의 영화에서 우리는 충분히 이런 감동들에 익숙하기 때문. 또 수많은 스포츠영화가 안긴 최루성 짙은 감동까지도 비슷하기에, 결국 어떤 식으로 드라마가 이어질지는 뻔한 일이다.
영화 장면을 한번 보자. 전직 유명 마라토너였던 체육선생이 반강제적으로 떠맡게 된 자폐아 초원(조승우)을 내치기 위해 운동장 100바퀴를 뛰라고 지시한다.
초원이 도중에 포기할 것이라고 믿으며. 그 다음 장면이 쉽게 연상되지 않는가.
하지만, 이 영화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그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을 적절히 이용해 충분히 소화해낸 느낌이다.
이번이 장편 데뷔작인 정윤철 감독의 신인답지 않은 연출력은 빛난다.
다음은 지난해 최고의 한해를 보냈던 조승우의 몫이다.
손가락 열 개를 제각각 움직이며 초점 없는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그의 천진난만한 표정 연기는 압권이다.
여기에 중견배우 김미숙의 밀도 있는 연기가 합쳐지면서 이 영화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춘 수작으로 탄생한 느낌이다.
인간 한계의 도전으로 묘사되는 힘든 42.195㎞의 마라톤 풀코스이지만, 마라토너들은 오히려 그 속에서 희열(Runner's High)을 느낀다고 한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순간 객석 전체를 이 희열 속에 푹 젖게 하는 것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묘미다.
상영시간 115분, 전체 관람가.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사진: 영화 '공공의 적2'(사진 왼쪽)과 '말아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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