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국회의원에 대한 우리의 편견

3040칼럼-안용흔(대구가톨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출퇴근 시간에 교통량이 많은 교차로를 지나다 보면, 차량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또 다른 방향의 차가 지나가지 못하고 서로 얽혀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하여튼, 우리나라 사람은 안돼, 교통질서의식이라고는…. 선진국이 되려면 멀었다니까…" 이 장면을 보면서,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한두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교차로에서 차량이 늘어져 있는 경우에 파란색 신호등이 켜져 있어도 운전자가 진행상황을 보며 기다리는 모습을 미국여행 중에 목격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역시 미국사람은 선진국민이야, 우리하고는 다르다니까…."

교통문제가 사회의 주목을 받을 때면, 신문이나 방송매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원인 진단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그럴 때마다 단골메뉴로 지적되는 것이 있다. 그 것은 다름 아닌 한국국민의 조급성이다. 뻔히 차량이 많아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도, 빨리 가겠다는 생각에 얼른 자기의 차를 앞차에 붙이고, 그러다 보니 교차로에서는 차량이 서로 얽히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일견 적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종종 미국과 같은 선진국가와의 비교가 이루어지면, 이러한 지적은 더욱 그럴싸해 보인다.

1994년 초만 해도 필자도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1994년 1월17일 LA의 북쪽에 위치한 노스리지라는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은 LA 다운타운을 지나가는 10번 고속도로 일부를 붕괴시켰다. 이 도로의 붕괴로 인해 다운타운에 직장을 둔 LA 주민들은 일반 도로로 우회하여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교차로에서는 차량이 엉키기 시작했으며, 운전자들은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끄덕만 하면 차량의 경적을 눌러 됐다. 한국과 비교하여 도로는 심하게 막히는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가 복구되기 전까지 이런 상황은 지속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LA에서의 이 경험은 우리의 교통문제가 한국국민의 조급성보다는 다른 요인, 예를 들어 도로상태나 교통체계와 같은 것에 기인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해준 좋은 기회였다.

요즈음 신문과 방송매체는 정치권에 대해서 나라는 위기에 처해있는 데도 불구하고 정쟁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05년 예산에서 나타난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를 위한 예산편성의 실태, 농촌지역 국회의원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의 반대로 인한 협정체결의 지연사태 등을 거론하면서, 국가이익 보다는 개인이익에 연연하는 국회의원이 문제라고 성토한다. 이러한 비판은 한국의 교통문제의 원인을 교통체계나 도로상태와 같은 운행의 외부적 조건보다는 운전자, 즉 한국국민의 조급성이라는 내부적 속성에서 찾는 논리와 아주 비슷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정치행태를 비판하는 이러한 시각이 대의민주주의제(代議民主主義制)의 근본적인 정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제하에서의 국회의원이란 의회라는 정치의 장에서 자신들의 이해를 직접적으로 대표할 수 없는 사회구성원을 대신하여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대리인과 같은 존재이다. 국회의원은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해준 자신들의 지지자들을 위해 의회에서 활동한다. 만약 어느 국회의원이 의회에서 자신들의 이해를 잘 대변해 주었다고 판단되면, 유권자들은 다음 선거에서 그 국회의원을 표로서 다시 지지해 줄 것이다. 따라서 의원직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국회의원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지역구 유권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데 전력을 쏟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 용 예산증액이나 농촌지역 국회의원의 농산물개방에 대한 반대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에게 자신을 희생하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독립열사가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처럼 대의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용 예산편성과 같은 것은 아주 고질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한국과 다른 것은 이 문제를 다룰 때 국회의원의 자질과 같은 내부적 요소가 아닌 정치제도와 같은 외부적 요소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1994년 지진으로 야기된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했던 LA시당국의 조치는 바로 이러한 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LA시당국은 운전자에 대한 교통예절교육이 아니라, 도로복구 시공업체에 대한 특별상여금 지급조치를 통해, 일정보다 빠른 시일 내에 도로를 복구함으로써 교통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안용흔(대구가톨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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