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던 고갯길 '문경새재'. 조선시대에 한양과 영남을 잇는 영남대로의 가장 중요한 길목이 바로 문경새재였다. 당시 이곳을 밟지 않고서는 한양을 오르내릴 수 없었다. 과거보러 가는 선비도, 등짐을 진 상인도 이곳을 거쳐야 했다.
오늘날 문경새재가 고갯길을 선인들의 숨결과 자취가 서린 문화유적이자 역사적 현장이라 일컫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민초들의 땀과 눈물, 길손들의 애환과 사연이 서려있는 새재 옛길은 이제 등산로, 오솔길, 산책길만 남아 옛정취를 말해주고 있다. 잘 닦인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가봤다.
문경새재가 정겨운 것은 고운 흙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무겁고 조급한 마음은 버리고 타박타박 걷기 좋은 흙길이다. 첫 번째 들른 곳은 제1관문 주흘관 앞에 있는 장승공원. 기기묘묘한 장승도 장승이지만 장승과 장승 사이를 이은 줄에 소원을 적은 종이쪽지가 끼워져 있다.
지난 1월1일부터 새재를 방문한 관광객이 적은 소원쪽지다. 주변은 온통 소원을 적은 소원지들로 마치 서낭당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소원은 가족 건강, 시험 합격을 기원하는 내용이 많지만 그중에는 '지금 애인과 헤어지게 해달라', '짝꿍을 바꿔 달라'는 이색 소원도 있다. 이 소원지는 다가오는 정월 대보름날에 불태워진다.
제1관문인 주흘관을 지나면서 여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장대한 성문을 지나니 왼편으로 드라마 태조 왕건을 촬영했던 세트장이 나타난다. 2만평의 부지에 고려궁, 백제궁, 서민촌, 양반촌 등 옛집을 재현해 놓았다. 마치 민속촌을 방불케 한다.
촬영장을 벗어나면 길은 호젓해진다. 제2관문인 조곡관으로 향하는 길가엔 옛날 길손들이 다리품을 쉬어가는 조령원터와 영남 감사 이.취임식이 열리던 교귀정, 그리고 근래에 복원된 주막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막에는 주모가 없어 목을 축이거나 요기를 면할 수는 없다. 그저 잘 복원된 '전시용 주막'일 뿐이다.
길은 한참을 걸어도 넓고 시원하게 뚫려 있다. 한글로 새겨놓은 '산불됴심비'등 옛날의 흔적들도 만날 수 있다. 1시간쯤 걸으면 2관문인 조곡관.
제2관문인 조곡관 주변은 기암괴석과 늠름한 장송, 그리고 계곡이 한데 어우러진 풍광을 자랑한다. 그야말로 선경이 따로 없다. 새재를 찾은 관광객들은 대부분 조곡관까지만 왔다가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거기서 포기하면 안된다. 조곡관을 지나면 숲은 더욱 깊어지고 인적은 뜸해진다. 초겨울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조곡관에서 제3관문인 조령관으로 이어지는 길은 문경새재의 옛길 중에서도 가장 호젓하고 옛 정취가 그윽한 구간이기 때문이다. 조령관까지의 거리는 3.5km. 오르막 길이다. 이전보다 조금 더 가파르지만 숨가쁠 정도는 아니다. 지나는 길에 '문경새재 아리랑비'도 만난다.
새재길은 과거길이었다. 선비들은 유달리 이 길을 많이 이용했다. 죽령길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워 떨어지고, 추풍령은 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속설 때문에 과거를 보러가는 유생들이 새재길을 고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장원급제길'이라는 소로가 있어 당시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와 '어사 출두요'를 외치며 금의환향하는 선비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문경새재 아리랑비'를 지나 한참을 오르면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급제를 기원하던 책바위가 있다. 여기 역시 장승공원처럼 온통 소원지들로 가득하다.
드디어 새재 정상. 제3관문인 조령관에 올라서니 백두대간의 명산 주흘산과 조령산이 좌우로 굽어보고 있다. 첩첩이 넘실대는 산물결은 장쾌하고 차가운 바람이 머리를 시원케 한다. 성문 너머는 충북 괴산 땅. 길은 새재와는 달리 포장도로다. 꿈결인 듯,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 오붓하고 예스러운 숲길은 여기서 끝난다.
그새 타박타박 흙길에 듬뿍 빠져버린 발걸음은 저절로 오던 길로 돌아간다. 새재관리사무소에서 제3관문 조령관까지 6.5km, 왕복 3~4시간 정도 걸린다.
사진.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 그밖에 볼거리
▲도자기전시관과 유교문화관
문경은 도자기의 고향이다. 새재 입구에 문경도자기전시관(054-550-6416)이 있다. 토기와 청자, 백자, 근.현대 도자기, 수석 등이 전시돼 있다. 가족들과 함께 도자기 실습체험을 할 수 있다. 전시관 바로 옆에 유교문화관도 있어 둘러볼만 하다. 유교문화관은 선비문화와 규방문화, 유교문화, 풍류문화 등 4개의 전시관을 갖추고 있다.
▲문경석탄박물관
새재에서 18km 떨어진 가은읍 왕릉리에 문경석탄박물관이 있다. 문경지역 광부들의 애환과 탄광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 94년 마지막으로 폐광된 은성탄광 위에 지어진 박물관에서는 실제 탄광 안을 들어가 볼 수도 있다.
▲고모산성
새재에서 3번 국도를 타고 상주방향으로 10km쯤 내려가면 천년고성 고모산성이 나온다. 신라시대 때 쌓아 전란 때마다 증축이 계속된 산성이다. 표지판은 없고 진남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면 된다. 고모산성 정상에 이르면 강 위에 가지런히 놓인 철교와 3개의 교량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문경온천
문경까지 와서 온천을 하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다. 지하 900m 화강암층과 석회암층 사이에서 분출되는 문경온천수는 피부염에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아포분기점(구미.김천사이)-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새재IC-문경새재도립공원(대구에서 약 2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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