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설 선물' 주고받기

조선시대의 설날에는 대신들이 궁궐로 가서 임금에게 문안을 드렸다. 8도의 감사와 수령들은 그 고장 최고 특산물인 '방물(方物)'을 바쳤다. 서민들 사이에서도 '정성'을 나누기는 마찬가지였다. 요즘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서도 그런 전통은 연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설 연휴가 시작되면 정성껏 장만한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으로 떠나는 모습은 여전히 정겹고 따뜻하게 보인다. 그러나 도를 넘어 초호화 선물을 주고받는 데는 문제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선물이 '뇌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쪊선물은 사랑'감사 등의 표시로 나누게 된다. 특히 이웃과 사회의 그늘진 곳에 보내는 선물은 '나눔과 사랑' 정신의 소산이다. 시대와 가치관이 바뀌더라도 인간적인 정을 소중히 여기던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풍습은 이어지는 게 옳다. 다만 그 경계가 모호하기는 해도 선물은 좋지만, 대가를 바라거나 뭔가를 덮기 위한 뇌물을 주고받아서는 안 된다.

쪊설 선물 주고받기를 놓고 기업들이 엇갈린 행보를 보인다. 유통'식품 업체 등이 '미풍양속'이라며 선물 보내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주요 대기업들은 '청탁성 뇌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엄격히 금지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반된 움직임의 와중에서 대한상공회의소는 '내수 진작' 등의 차원에서 선물 주고받기를 적극 제안하고 나서 주목되고 있다.

쪊상의는 박용성 회장 명의로 전국 상공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이야말로 경제 주체들이 건전한 소비를 통해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때"라면서, '합리적 설 선물 주고받기'를 제안했다.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벌여온 선물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을 '정도가 벗어나지 않은 범위'에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인 셈이다. 일부 기업들은 이미 '작은 정성' 보내기를, 주요 대기업들은 '엄격 금지'를 하고 있다.

쪊사실 선물과 뇌물의 경계는 애매하다. 그래서 '조그마한 선물은 사례도 조그마하다'(프랑스 속담)거나 '은밀히 안기는 선물은 화를 가라앉히고, 몰래 바치는 뇌물은 거센 분노를 사그라뜨린다'(성서)는 말도 전해오고 있다. 선물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을 벌이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태우는 격'이라는 시각에도 분명 일리가 있다. 그러나 설 연휴를 뇌물 전달 시기로 활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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