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말아톤

13세에 영국 BBC 방송에 출연해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로 칭송받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로 알려진 스테판 윌쇼어. 그는 3세에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5세부터 특수학교에 입학해, 그림을 통해 세상과 의사소통을 하였다. 말이 없고,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 세계에 빠져 살며, 갑자기 뛰어다니거나 괴성을 질러대는 자폐아였으나, 건축물을 보고 그대로 묘사해 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던 것이다. 이처럼 전반적인 지능 발달은 늦지만, 기계적 암기나 음악, 회화 등 어떤 특정한 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정신지체자를 프랑스 말로 '이디오사방'이라고 한다.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초원이는 20세가 되었지만, 마라톤을 말아톤으로 겨우 쓸 정도로 지능이나 언어 능력은 5세 수준이었다. 손가락을 계속 움직여대는 상동적 행동과 아는 길만 고집하거나, 초코파이와 얼룩말에 환장하는 등 틀에 박힌 것을 반복하고, 물건의 냄새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사람과 상호교류가 거의 불가능한 자폐증 환자였다.

어머니는 나들이길에 초원이를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다루기 힘든 초원이를 버리고 싶은 어머니의 무의식적 실수였을까. 어머니는 우연히 초원이의 달리기 실력을 발견하면서, 아들에게 마라톤을 시키기로 결심한다.

한편, 초원의 마라톤 코치 정욱은 음주 운전으로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초원이네 학교로 배정된다. 한때는 세계 마라톤 대회를 석권한 그였지만, 지금은 알코올 남용을 일삼는 무력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정신지체가 동반된 자폐아 초원, 우울감을 동반한 알코올 남용자인 마라톤 코치 정욱, 아들로 향한 끝없는 몰입과 헌신으로 결국 에너지 고갈로 인한 우울증을 겪는 어머니 경숙. 모두에게 현실은 가혹했다. 세 사람의 갈등이 역동적으로 전개되면서, 영화는 '윈윈'의 감동을 선사한다. 세계를 제패하고도 우울감에 빠져 술에 탐닉하며 인생을 흘려보내던 마라톤 코치 정욱은 초원이를 만나면서, 뭔가 해보려는 동기를 갖게 되고, 이타심을 발휘하는 변화를 보였다. 어머니의 집념과 희생은 자폐아 초원이가 시설로 수용되지 않고, 사회 안에서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주었다. 초원이는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장애자가 아니라, 모든 능력과 조건을 갖추고도 위기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일깨우는 신선한 산소 같은 존재였다.

가축업에 대한 컨설팅과 자폐증 강의로 시간을 보내는 템플 그랜든이라는 동물학자가 있다. 본인이 자폐증이었던 그녀는 사람들과는 감정 교류가 불가능했으나, 가축들의 감정은 잘 이해하였고, 가축과 지내는 것이 그녀에게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 되었다. 그녀는 잔인한 도살장의 환경을 개선하고, 가축을 수월하게 다루는 기구를 고안하여, 도살장에서 일하는 여성 1호가 되어 큰 성공을 거둔다.

"심리학적, 정신과적, 도덕적 이론들은 모두 무의미하다. 결핍만 너무 강조할 뿐, 능력 개발에 대해서는 충분히 강조하지 않았다." 그랜든은 한 가지에 집착하는 자폐증의 특성을 한 분야의 깊은 지식을 계발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초원이, 윌쇼어, 그랜든은 자신의 언어적, 정서적 결핍을 불평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주어진 능력을 부단히 계발한 '이디오사방'이었다. 우리 사회에 자폐아에 대한 편견과 곱지 않은 눈초리가 있었다면, 이런 영화를 계기로 부정적인 시선이 개선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에서도 윌쇼어나 그랜든 같은 이디오사방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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