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문학의 사생활

김화영 지음/문학동네 펴냄

김수영이 있고 박인환이 있고 전혜린이 있던 그 시절, 서울의 명동은 거리 전체가 하나의 살롱이었다. 그곳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 역시 그 문화의 향유자였다. 그들은 시인, 소설가, 화가, 무용가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노래할 수 있었고, 문화 예술인들이 육성으로 말하는 문학관과 예술관을 들을 수 있었다.

박인환이 '목마와 숙녀'를 낭송하던 그 자리에는 문학을 꿈꾸던 많은 학생들이 함께 자리하곤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또하나의 공간이 있었다. 지난 시절 명동과는 다르지만, 또다른 문화의 거리인 대학로 한쪽에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기획으로 진행됐던 '금요일의 문학이야기'가 그것이다.

지난 2002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 경북 영주 출생인 김화영 교수(고려대 불문과)는 24명의 시인, 소설가, 평론가, 기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자리에는 그들의 문학작품을 읽고 문학에의 꿈을 키워가는 독자들도 함께했다.

'한국문학의 사생활-김화영의 문학이야기'는 바로 그 대화의 기록이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독자들은 그들의 문학관과 예술관 뿐만 아니라 노 시인의 삶이 더해진 농담을 들을 수 있었고, 동시대의 젊은이로서 작가들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자리는 늦은 밤 술집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나는 시뿐만 아니라 예술이라는 것은 구속이 아니라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아주 자유로운 것이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입니다." 깐깐하고 고집스럽고 단호한 줄만 알았던 고 김춘수 시인의 단정하고 따뜻한 음성을 저자는 이렇게 전한다.

"마치 물이 마구 밀쳐들어오듯이, 뒷문장이 끌려나오고, 뒷이야기는 어딘가에 내재되어 있었겠죠. 그게 나와요." 작가 신경숙의 목소리도 담겨 있다. 책 속에는 이들 말고도 여전히 필력을 과시하고 있는 고은 선생을 비롯해 이청준'이승우'송하춘'윤후명'한승원'박범신'이문열'김원우'황지우'이인성 등 선배 작가들과 현재 한국문단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이혜경'성석제'하성란'김영하'조경란'윤대녕'이문재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명의 작가들이 저마다 특색 있는 음색을 들려준다.

작품의 특색을 고스란히 내보이기도 하고 또 작품과는 다른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기도 하며, 독자들과 함께 웃고 찡그리고 숨쉬고 머뭇거리기도 한다. 작가들로부터 이런 육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김 교수의 깊이 있는 작품 읽기와 재치 있는 화술 덕택이다. 그래서 작가들의 사적인 영역을 조심스레, 그리고 솔직하게 보여주는 살아 숨쉬는 문화의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대화는 가급적 평론가들의 영역인 작품의 해석이나 평가와 같은 엄숙한 내용은 피하고, 그 작품을 쓰게 된 동기와 집필 과정, 그리고 거기에 따른 어려움과 에피소드 등 주로 작품의 사생활 쪽에 치중했습니다." 저자가 책머리에 남긴 말이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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