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담당 기자를 몇 년 째 하다 보니 "우리 애 다니는 학교에 있잖아요", "우리 애 선생님이 말이야"라며 이야기를 꺼내는 이들을 흔히 만난다. 오며가며 만나는 사람들은 물론 회사 선'후배에 이르기까지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이들 열에 아홉은 너 잘 만났다는 듯 학교나 교사에 대해 이런저런 불평을 터뜨린다.
그 중 대다수는 학교의 교육과정이나 교사가 처한 환경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들이라 어느 정도 대화를 통해 풀리곤 한다. 하지만 더러는 학교나 교사의 명백한 잘못이거나 정책적 오류, 비리 등 기삿거리가 되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열이면 열, 누구든 기자가 관심을 보이며 슬슬 캐묻고 들면 입을 닫아버린다는 사실이다. 목청 높여 떠들다가도 "문제가 좀 있네. 자세히 알아 봐야겠네"라고 슬쩍 말하면 손사래부터 친다. "우리 애 학교 말고 다른 데 찾아보세요", "기사 쓰라고 한 얘기 아니니까 절대 취재하면 안 돼요"라며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당연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우리 교육의 현실과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모습이다. 학교나 교사를 불신하고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같은 마음이 들키면 큰일 난다는 학부모들의 이중적인 심리는 우리 교육의 전근대성을 여실히 입증하는 방증이다.
이는 학교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이 아직도 수직적인 구조 속에 있으며 문제점이나 불만을 대화로 풀어가는 협조 체제가 정착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학내 문제를 밖으로 떠드는 것 자체를 학교에 대한 배반으로 보는 폐쇄적 학교 운영이 당연시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학교의 문제나 비리 등을 처리하는 교육 당국의 태도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무엇이 어디서 잘못 됐나를 따지는 게 아니라 어쩌다 이런 일이 밖으로 흘러나오도록 방치했느냐는 추궁부터 먼저 하고, 제보자가 있을 경우 보호는커녕 학교에 이를 알려 제보의 배경이나 제보자의 문제점부터 찾게 하는 관행 때문이다.
얼마 전 학교 기부금 문제를 제보한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공개된 자리로 불려나와 교육 당국의 감사를 받았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신분을 노출시켜 학내 비리를 폭로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라며 반발했지만 결국엔 비리도 바로잡지 못하고 "공연히 아이만 전학시켜야 하는 형편이 됐다"라며 제보 차제를 후회했다는 후문이다.
학교도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조직인 만큼 문제점이나 비리 등이 있는 게 당연하다. 교직이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한다고 하지만 교사 숫자가 엄청나니 물을 흐리는 이들은 있게 마련이다. 오늘날 우리 교육에 뿌리 박힌 잘못된 관행이나 비리들은 대개가 문제가 작고 한두 명일 때 바로잡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들이다.
3월이 되면 새 학교, 새 학년이 되고 기자는 또 많은 이들로부터 "우리 애 학교는…", "우리 애 선생님은…"이라는 이야기들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금세 익명의 그늘에 숨으려 드는 모습도 마찬가지로 보게 될 것이다.이런 씁쓸한 풍경이 달라지지 않는 한 우리 교육의 희망 찾기는 요원하다. 올해는 교육당국이 이것부터 바로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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