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천200년 전에 만들어진 신라시대 무덤에서 이슬람인의 모습이 발견됐다면 신라사람들이 이슬람 민족과 실제 교류를 했다는 뜻일까, 아니면 중국의 문물을 모방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우연의 일치일까. 또 신라와 이슬람계가 직접 교류를 했다면 이슬람 민족은 어떤 경로로 경주까지 왔을까.
경주에서 울산 가는 7번 국도변 외동읍 괘릉리 산 17번지에 자리 잡고 있는 괘릉(掛陵·사적 제26호)은 이 같은 많은 의문을 안고 있다.
여러 가지 해석과 논란, 유물연구 등을 통해 신라 38대 원성왕(785~789)의 무덤으로 굳혀진 이 왕릉은 경주에 있는 다른 많은 무덤과 달리 무슬림의 형상을 한 독특한 석조물 때문에 사학자들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부리부리한 눈에 텁수룩한 구레나룻
이 왕릉이 관심을 끄는 것은 무덤보다는 무덤 앞의 석조물 때문이다.
봉분으로 치자면 경주에 있는 것들 가운데 크기나 화려함에서 오히려 초라한 편.
무덤의 제일 남쪽에 있는 화표석(華表石)이라는 팔각 돌기둥은 이곳이 왕릉임을 알리는 표시이고 그 옆으로 무인상 2기와 문인상 2기가 서로 마주보며 서 있다.
특이한 것은 2기의 무인상. 부리부리한 눈과 오똑한 코, 텁수룩한 구레나룻 수염과 두드러진 광대뼈. 머리에는 이슬람 계통의 상징인 터번(머리에 둘둘 감는 천)을 썼다.
이런 특징으로 미루어 한국, 중국, 일본, 몽골 등 우리와 가까운 아시아계의 모습은 분명 아니고 신라와 교역했던 페르시아인, 아라비아인, 이란인 등 서남 아시아계 아랍계로 학설은 굳어졌다.
학창시절 배웠던 신라 향가 '처용가'에 나오는 처용 또한 이 석인상과 같은 유형의 아랍계로 해석이 모아지는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 물론 학계에서도 아직까지 논란을 벌이고 있어 정확한 대답을 내놓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의문거리, 아랍인의 경주진출로
만약 아랍인이 맞다면 어떻게 경주까지 왔을까 하는 점도 의문거리이다.
이 역시 학계에서는 이설이 많다.
한때는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미술품 정도로 해석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 학계 인사는 전했다.
아랍인들이 직접 온 것이 아니라 수·당의 미술품을 보고 모방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그러나 중국과 아랍권 현지에서 발견된 여러 문헌에서 '무슬림들이 신라국에 정착했다'는 구절이 발견되면서 중국을 경유했거나 울산항을 통해 경주까지 진출했다는 설이 정설이 됐다.
따라서 원성왕릉의 석인상은 신라인들이 아랍계 상인들을 직접 보고 만들었을 것이라는 쪽으로 결론이 난 상태다.
◇비단과 유리, 아랍인들의 전래품
괘릉은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있다.
무덤 앞의 무인상이 아라비아인으로 정해지면서 황남대총과 천마총, 서봉총, 금관총 같은 경주 시내에 있는 많은 고분에서 발견되는 유리잔과 유리병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신라와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고구려나 백제 무덤에는 없는 유리제품이 유독 신라 무덤에서만 나오는 것은 육지와 바다의 실크로드를 이용해 신라와 교역했던 서역인(西域人)들의 전래품이기 때문이라는 것.
신라 고분에 부장된 유리그릇은 기원전 1세기 무렵 로마의 속주였던 이집트나 시리아에서 개발돼 세계 각지에 전파돼 로만 글라스(Roman glass)로 이름 붙여진 것들로, 이집트나 시리아에서 수 만리나 떨어진 신라까지 오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은 불문가지.
이들 제품의 전래 경로에 대해 유병하 경주박물관 학예실장은 "북아시아의 초원지대를 관통해 중국 북부를 경유하거나 중앙아시아 사막지대와 중국의 장안을 거쳐 신라까지 왔을 것"이라며 "뱃길로 인도와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베트남을 경유해 중국 남부와 신라에 이르렀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신라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이처럼 많은 역사와 학설을 간직한 채 1천200년을 넘게 버티고 있는 괘릉을 보면서 '신라 땅에서는 돌 하나 풀 한 포기조차도 가볍게 보지 마라'는 말을 되새기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경주·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사진: 경주에서 울산 가는 7번 국도변 외동읍 괘릉리 산 17번지에 자리 잡고 있는 괘릉의 무인상. 부리부리한 눈과 오똑한 코, 텁수룩한 구레나룻 수염과 두드러진 광대뼈. 머리에는 이슬람 계통의 상징인 터번을 쓴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서남 아시아계 아랍계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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