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비슬산에 참꽃 피면

불 난 산에 고사리가 많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작년 가을에 불이 난 비슬산에 고사리를 꺾으러 갔더니, 고사리는 없고, 타다가 남은 가지에서 듬성듬성 참꽃이 피고 있었다.

한국의 산에는 이렇게 앞산 뒷산 참꽃이 없는 산이 없다.

그러나 참꽃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싫어하는 꽃인가 보다.

내가 날마다 산책하기 위해 찾아가는 인근 학산이나 두류산은 비록 도시 한복판에 있는 산이지마는, 아카시아, 싸리, 소나무, 참나무들로 제법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꾸 꽃을 꺾어 가 버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참꽃이 공해에 약해서인지 그 까닭은 잘 모르겠으나 여기서는 여태 야생하는 참꽃을 구경하지 못했다.

참꽃은 이렇게 비록 숲이 우거진 산이라 할지라도, 인가 가까이에 있는 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다.

그래서 그런지, 속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꽃이다

내 고장에서는 지금도 진달래꽃을 참꽃이라 하고, 철쭉을 진달래라고 한다.

어쨌거나 참꽃은 진달래보다 먼저 피는 꽃인데, 해마다 사월 중순쯤 되면 내 고장 앞산 호봉은 온통 참꽃으로 뒤덮이다시피 하였고, 나는 그때를 놓칠세라 산을 오르내리면서 꽃을 따먹곤 했다.

비슬산 참꽃 축제는 사월 중순에 열린다.

몇 해 전부터, 한 주일에 한두 번씩 이 산을 오르내린 것은 대개 삼월 하순부터 사월 하순까지인데, 이것은 참꽃 구경을 하기 위해서였다.

삼월 하순쯤에 처음 이 산에 와 보면, 산의 들머리에서 이미 활짝 핀 참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보고 나는 번번이 "산기슭에 조그만 계집애들이 분홍치마를 입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 같다.

"고 한 심훈의 말을 떠올린다.

산기슭에 만발해 있는 꽃을 보고서는, 행여나 하고 산등에 올라 참꽃을 찾아보았으나 여기서는 아직 감감소식이었다.

삼월은 겨우 해발 800여 미터의 차이로, 산의 위아래를 이렇게 딴 세상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월 초순에 참꽃은 산허리를 태우고, 중순에 이 불은 산등으로 번져 산 전체를 벌겋게 만든다.

이렇게 비슬산의 참꽃은, 산밑에서 피기 시작하여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 스무날은 걸린다.

그래서 참꽃이 산 전체를 뒤덮으면, 드디어 신문이나 방송에 비슬산 참꽃 축제가 열린다고 보도되는데, 사실 비슬산 기슭에서는 이미 이보다 한 달쯤 전부터 여기저기에서 참꽃이 피기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활짝 핀 참꽃은 사람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혜원(蕙園)의 풍속도에 '연소답청(年少踏靑)'이라는 그림이 있다.

몇 쌍의 남녀가 상춘길에서 돌아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 통량갓에 도포 입은 남자들이, 기생같이 보이는 여자들을 말에 태워 앞세워 놓고 있다.

여기서 말 등에 올라앉은 여인들이나, 통량갓을 벗어들고 뒤따라가는 남자의 모습에 춘색이 도도한데, 이들의 행색을 이렇게 화사하게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은, 이 그림의 배경이 되고 있는 산자락 여기저기에 만발한 참꽃이다.

더구나 여인들 중에서 한 사람은 참꽃을 꺾어 머리에 꽂기까지 했는데, 이것이 화폭 전면에 생기를 깐다.

이렇게 활짝 핀 참꽃은, 보는 사람의 가슴까지 봄바람으로 울렁거리게 만든다.

옛날에 백거이(白居易)가, "두견새가 울 때마다 한 송이씩 꽃이 피네(九江三月杜鵑來 一聲啼得一花開)"라고 노래하였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꽃은 물론 참꽃을 가리키는 것이겠지마는, 내가 보기에는 이 꽃이 아무래도 두견새의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할 만큼 애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혜원의 풍속도에서도 그러하거니와, 이것이 또 옛날에 곧잘 동네 머슴들의 나뭇짐 위에 얹혀 오던 꽃이라는 것만 보더라도, 참꽃을 눈물의 꽃으로 노래하지 말고 축복과 환희의 꽃으로 노래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참꽃이 피는 산은 고향의 앞산 같다.

그래서 길이 좀 멀기는 하지만, 참꽃 필 무렵이 되면, 올해도 나는 나의 산책 코스를 비슬산으로 바꿀 것이다.

그리고 산삼을 찾아 다니는 심마니들처럼, 분홍치마 입은 조그만 계집애들을 찾아서 종일토록 산등을 타 볼 작정이다.

이주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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