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선 이후 1992년, 1997년, 2002년 등 세 차례의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국민은 여론조사에 익숙해졌다.
수시로 발표되는 여론조사결과에 따라 후보들의 지지도변화를 언제든지 알 수 있었고 여론조사기관들의 귀찮을 정도로 집요한 지지도 조사에 수시로 시달렸다.
그래서 정보화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은 여론의 시대라고 하기도 한다.
선거나 사회현안에 대한 여론조사뿐 아니라 기업들의 제품트렌드조사 등이 봇물처럼 상시로 이뤄지고 있다.
여론의 시대란 '여론조사 전성시대'와 다름 아니다.
정치권은 특히나 여론에 민감하다.
취임 2주년을 맞은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지지도 조사도 실시됐고 '독도 문제'가 불거지자 여론도 들끓고 있다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난 결과를 정치권은 전체 국민의 의견으로 치부하는 등 여론조사는 참여민주주의의 과정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또한, 매일신문의 인터넷홈페이지(http://www.imaeil.com)를 비롯한 각종 인터넷사이트들도 사회적 현안이 제기될 때마다 '온라인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여론조사가 우리 사회에서 확실하게 인식되게 된 계기는 1987년 대통령선거다.
12월17일 투표가 마감된 오후 6시. 한국갤럽은 우리나라 최초로 선거예측결과를 언론에 발표했다.
노태우 후보가 34.4%의 득표율로 당선될 것이라는 여론조사결과를 밝힌 것. 한마디로 '도박'이었다.
개표결과 노 후보는 2.2%나 더 많은 36.6%의 득표율로 13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여론조사의 과학성에 사람들은 감탄했다.
한국갤럽 박무익 소장은 "이 일로 우리나라 여론조사의 고속도로가 개통됐다"고 표현할 정도로 여론조사기관 전성시대가 열렸다.
박 소장은 "무엇보다 사람의 사고방식을 합리적으로 만들고 우리 사회를 보다 건전하게 하는 기반이 구축된 것으로 본다"면서 "정치뿐 아니라 기업들도 데이터에 바탕한 의사결정을 선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여론조사의 적중률을 확인한 정치권은 물론 기업들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여론조사 및 마케팅조사에 의존하게 된다.
정당들은 사전 여론조사를 통해 공직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들을 공천했고, 기업들은 신제품이나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할 때마다 면밀한 마케팅조사를 하지않는 경우는 없다.
방송사들의 TV드라마도 시청률 조사결과에 따라 일찍 막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물며 정부와 정부투자기관 등 공공기관들까지 일반국민과 기업들을 대상으로 '고객 만족도' 조사를 정기 실시하고 있고, 이를 CEO들과 기관평가의 주요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여론조사시장 현황
국민에게는 정치사회조사가 여론조사의 대부분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여론조사시장의 80% 이상은 기업들의 마케팅조사다.
1980년대 이후 우리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조사시장'도 1990년대 이후 동반 성장하고 있다.
특히 IMF 이후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광고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조사시장은 연간 25~30% 이상의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는 시장경쟁이 더욱 치열해짐에 따라 보다 합리적인 데이터에 의한 마케팅활동을 하지않을 수 없게 된 데 따른 것.
지난해 우리나라의 조사시장 규모는 2천500억~3천억 원 선으로 업계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조사전문기관의 숫자는 한국마케팅여론조사협회(KOSOMAR)에 가입한 30여 개 사를 포함, 80여 개에 이를 정도로 난립하고 있다.
그중 빅5인 AC닐슨코리아와 리서치인터내셔날, TNS코리아, 한국리서치, 한국갤럽 등 상위 10여 개 업체가 전체조사업계매출의 68%를 차지하고 있고 KOSOMAR회원사의 매출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구에서 성장한 에이스리서치(조재목)가 서울에 진입한 것도 주목거리다.
협회에서는 선진국의 경우 조사시장의 매출이 광고시장 매출의 5% 안팎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나라의 조사시장은 여전히 성장잠재력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광고시장매출을 6조~7조 원 선으로 추정한다면 6천억~7천억 원 정도가 조사시장매출로 이어져야 하는데도 아직 절반 정도 수준밖에 되지않기 때문이다.
조사시장의 비중도 제조업을 비롯한 정보통신과 유통업체 및 금융·건설·부동산회사의 마케팅조사가 80%에 이를 정도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체의 비중이 53%, 정보통신과 인터넷산업이 13.5%, 유통이 6.8%를 점유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익숙한 언론과 방송사의 여론조사는 불과 0.5% 정도밖에 되지않고 있고 정치권의 '선거특수'도 사실상 전무하다시피한 게 사실이다
조사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거관련조사의 비중이 전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적다 보니 '선거특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사업계에는 KOSOMAR회원사 외에도 50여 개 업체가 더 있다.
줄잡아 80여 개 안팎의 조사업체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사업체가 난립하면서 빚어지는 문제점도 적지않다.
과당경쟁으로 인해 저가로 수주할 수밖에 없어 조사의 수준(quality)을 보장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 KOSOMAR 박보미 사무국장은 "그래서 조사업계의 최대과제는 조사국제표준화 제정"이라면서 "지난해 산업표준화 및 품질인증제도 도입을 위한 기초작업에 이어 연내에 시안을 만들어 2008년까지는 국제기준의 ISO 등 인증제도 도입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사대상 1인당 평균 비용이 2만 원 안팎으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 최저입찰제로 발주하기 때문에 저가수주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 마케팅조사 어떻게 하나
한국의 여론조사시장의 역사로 통하는 한국갤럽은 1974년 KSP(Korea survey polls)로 출발했다.
이 KSP의 첫 프로젝트가 금성사의 세탁기 광고효과측정이었을 정도로 여론조사는 마케팅조사로부터 시작됐다.
조사시장의 부동의 1위인 AC닐슨코리아의 대부분의 매출 역시 기업들의 마케팅조사에서 나온다.
마케팅조사는 소매점조사와 소비자를 대표할 수 있는 패널가구의 실질구매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소비자패널조사,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마케팅조사, 홈패널조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특정제품과 경쟁사제품을 망라한 판매형태를 조사하는 '신디게이트리서치'방식도 도입돼있다.
이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마켓쉐어'(시장점유율)이라는 용어도 이처럼 AC닐슨 등 조사기관이 조사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조어였다.
소비자패널조사는 일반소비자를 대표할 수 있도록 선발된 패널(panel)가구의 실질구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기적으로 소비자의 쇼핑행태와 경향에 대한 추적조사(트레킹)와 분석을 하는 것이다.
즉 특정제품을 사던 사람이 경쟁사의 제품을 사는지 아니면 다른 제품으로 대체한 것인지 소비자의 선택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갤럽 박 소장은 "마케팅조사로 기업의 올바른 의사결정을 도왔기에 한국의 애니콜이나 휘센이나 쏘나타같은 제품이 전세계를 석권하게 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국마케킹여론조사협회의 권오휴 회장은 "조사시장도 우리 경제의 위상을 반영하고 있다" 면서 "초창기에는 해외의 세계적인 제품의 국내시장조사가 주류를 이뤘는데 이제는 우리기업들의 해외시장(아웃바운드)마케팅조사가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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