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변질된 초교 학급회장 선거

"이렇게 변질돼서야 초등학교 학급회장 선거 꼭 필요한가요?"

학생들에게 어릴 때부터 민주주의를 교육하고 선거의 참뜻을 알게 하는 좋은 체험의 장인 초등학교 선거가 인기투표 형식으로 흐르거나 학부모끼리의 경쟁으로 발전하는 등 부작용이 계속되자 일부에서는 아예 학급 임원 제도를 폐지하라는 주장이 터져나오고 있다. 올바른 정치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지 못하고 부정적인 면만 부각될 바에는 아예 없애는 편이 훨씬 교육적이라는 것이다.

▲어른 정치 뺨쳐요

조민식(41'북구 팔달동)씨는 초등학교 학급 회장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매일 밤 걸려오는 전화에 짜증이 났다. 3학년이 된 아들의 친구들이 앞다퉈 전화를 걸어 "나를 뽑아주면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는 식의 꼬임을 늘어놨기 때문.

조씨는 "민주주의를 가르친다고 하지만 지금 학생들의 선거 문화는 어른들의 나쁜 점만 닮아 있다"며 "금품으로 표를 모으고 누가 누구를 밀어준다는 식의 담합을 하는 등 불법으로 얼룩진 선거라면 차라리 없애는 편이 훨씬 교육적일 것"이라고 분개했다.

초등학교 회장 선거 경쟁은 아이들 선거가 어른들의 대리전 양상을 띠면서 더욱 치열해졌다. 일반적으로 학급 회장의 어머니가 해당 학급의 어머니 대표로 역할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학부모들 간에 경쟁도 치열해진 것. 또 회장이 됨으로써 아이의 지도력도 키우고, 다른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학부모들이 내 아이 회장 만들기에 매달리는 이유다.

▲학급회장은 봉(?)

이와는 반대로 장모(38'북구 침산동)씨는 회장 선거에 나가겠다는 아이를 애써 만류했다. 집안 살림이 넉넉지 않아 맞벌이에 나서고 있는 장씨의 입장에서는 학급 임원이 되면 감당해야 할 학급 비품 구입비나 반 아이들에게 돌릴 간식 값 등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장씨는 "임원이 되면 학급의 커튼 교체는 물론 각종 비품을 구매해 주는 것이 관례로 굳어져 있다"며 "굳이 교사가 요구하지 않아도 같은 반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의 은근한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줘야 하는 경우가 많아 아예 출마를 하지 말라고 아이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교사들이 '학급 운영비' 명목으로 학급회장단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있어 경제력이 떨어지는 학부모들은 아예 아이에게 출마조차 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밖에 없는 사정인 것.

이에 대해 박신자 교동초교 교사는 "금전적 부담을 은근히 부추기는 교사도 문제지만 이에 따르는 학부모도 문제"라며 "잘못된 관행이라면 단호히 거부하고 교육청에 고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꾸면 안되나요

이처럼 초등학교 선거가 각종 부작용으로 얼룩지자 대안을 마련하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혜선 참교육학부모회 대구지부장은 "어릴 때부터 선거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쌓고, 학생 간에 차별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더구나 요즘은 회장의 역할조차 불분명해 아예 제도 자체를 없애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지부장은 또 "학부모가 먼저 나서서 금품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학생을 맡겨둔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행여나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돼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일부 교사들도 이 같은 학부모들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문제가 많은 기존 학급 회장제보다는 월별로 학급 회장을 뽑거나 일일회장제를 실시하고 있는 교사들도 상당수다. 일일회장제를 실시하고 있는 박선애 팔달초교 교사는 "여러 가지 부작용도 원인이 됐지만 다수의 학생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남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진정한 '리더십'의 의미를 깨우쳐 주기 위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학급회의를 진행할 회장이 없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다른 학급 운영에 어려움이 거의 없고 아이들의 관계도 더욱 좋아진 것 같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최재습 대구시교육청 초등장학관은 "학급회장제 시행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학교별로 교장'교사가 선택하는 사항"이라며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은 어려우므로 지도감독을 강화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