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들 생각-'아큐정전'를 읽고

1921년 잡지에 연재됐던 루쉰의 '아큐정전'은 중국 현대문학의 출발점이 된 기념비적 소설입니다. 신해혁명을 전후한 농촌을 배경으로 정확한 이름도 모르는 '아큐'라는 최하층 날품팔이 농민의 삶을 전기 형식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노예 근성을 지닌 아큐는 집도 없고 일정한 직업도 없이 닥치는 대로 막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해갑니다. 하지만, 자존심만은 누구 못지않게 강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해도, 머리가 조금 벗겨진 대머리여도, 정말 자신보다 더 못하다고 깔보던 인물에게 흠뻑 두들겨 맞아도, 그나마 번 돈을 매번 노름으로 날려버려도 상관하지 않고 '정신적 승리법'이라고 부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을 무시해버린 거죠.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던 해, 아큐는 마을 사람들이 혁명당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는 혁명당이 자신의 편이 되어 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신이 나 마을을 주름잡고 다닙니다. 그러나 정작 혁명당이 입성해도 별 변화는 없고 혁명의 선두는 아큐가 경멸했던 가짜 양놈이 차지하고 맙니다. 어떻게든 그 무리에 끼어보려 했지만 쫓겨난 아큐는 그날 밤 조 나으리 댁이 폭도들에게 털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아큐는 갑자기 체포됩니다. 조 나으리 댁을 습격한 폭도의 누명을 뒤집어쓴 것이었죠. 하지만,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아큐는 결국 폭도가 아니라는 항변조차 못한 채 총살형을 당하고 맙니다.

1. 아큐는 강자에게 얻어맞고 그 분풀이를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했던 적이 있나요?

2. 아큐의 가장 큰 무기는 '정신적 승리법'이라고 부르는 자기합리화입니다. 속상하고 억울하고 분하지만 어떻게든 순간의 기쁨을 찾으려는 아큐만의 생각법이죠. 아큐의 정신적 승리법에는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요?

3. 중국이 중화사상에 젖어 있었다면 우리는 근대에 들어서까지 사대주의 사상이 강하게 남아있었습니다. 두 가지는 어떻게 같고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자기합리화

아큐의 가장 큰 무기는 '자기합리화'다. 누가 뭐라든, 어떤 비굴한 상황에 처했든,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정신적 승리'로 탈바꿈시키는 방식인 것. 그래서 아큐는 자신을 조롱하는 소리를 들어도 분노하지 않는다. 놀랄 정도로 무기력한 모습이며 자기 기만이다.

이런 자기합리화는 현실을 올바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기 편한대로만 해석하도록 해 개인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비판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지만 아큐는 제멋대로의 생각에 빠져 허우적댈 뿐이다.

작가는 아큐의 모습을 통해 당시 서양 열강들의 침략을 받아 민족적인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대국의식과 중화주의에 빠져 대안 모색은커녕 위기라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중국인들을 비판했다.

▲노예정신

욕을 먹거나 낭패를 당한 후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분풀이를 행하는 아큐는 천상 벗어날 수 없는 노예정신의 소유자이다. 강자 앞에서는 비굴할 정도로 굴종하지만 약자 앞에서는 으스대고 자신의 고통을 떠넘기려 한다. 노예는 시키는 일만 하고 남에게 맞아도 가만히 있으며 무사안일만을 추구한다. 주체성이나 주인의식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부분적으로 노예근성이 있게 마련이다. 남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앞에 나서서 일을 진취적으로 처리해가는 것보다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또 일의 결과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나면 일단 마음도 편하다. 내가 스스로 원하고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애써 상기해 냄으로써 결과에 대해 무작정 승복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노예정신은 미래지향적 사고를 방해한다. 가령 독도는 내 문제가 아니니까, 정치는 관심 밖의 일이라서, 학교는 졸업하면 그만이니까, 잘못된 점이 있어도 그냥 방관하겠다는 식의 자세는 결과적으로 아큐의 사례처럼 자신의 삶까지 황폐화시킬지 모른다.

▲신해혁명

이 작품은 중국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으로 불리는 '신해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해혁명은 독립국이라고는 하지만 열강의 침탈로 '반식민지' 상태에 처한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청 황제 퇴위를 조건으로 위안스카이가 대총통 자리를 넘겨받은 일련의 사건을 말한다.

하지만, 이 혁명은 말만 '혁명'일 뿐 이전과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다. 청나라가 사라지고 나라의 대표가 위안스카이로 바뀌었을 뿐 국민의 실상은 전혀 변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정치인들 역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열강의 꽁무니를 좇아 이합집산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루쉰은 이 소설에서 덩치는 크지만 자신보다 훨씬 작은 열강들에게 제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하는 중국의 무기력함, 국내외의 조롱을 들으면서도 결국 중국을 합리화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아큐에게 빗대 비난을 퍼붓는 한편 혁명의 의미마저도 조롱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같은 일이 중국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작품 속 중국인들의 형상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의 근대사가 연상된다. 힘없는 약소국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은 일견 이해할 수 있지만 너무나 무기력한 변명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역사를 제대로 돌아보고 반성해 볼 일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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