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장애인 4인의 세상나기

"마음의 눈 활짝 뜨니 할 일 많아요"

대구시 중구 남일동 시각장애인문화원은 시각장애인들의 만남의 장이자 장애 극복의 터전. 시각장애인들은 이곳에서 동병상련을 나누고 재기를 다진다.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들이지만 세상의 봄은 가장 먼저 느낀다.

"동성로 한일극장 앞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40∼50분 기다리는 일은 흔한 일이고요. 전봇대를 들이받아 머리에 피가 나기도 하고 시궁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일도 지겨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장애를 마음 속으로 받아들인 이후 세상은 달라졌고 시인 등단도 하고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경북대 대학원에 다니던 11년 전 '포도막염'으로 시력을 잃어버린 장삼식(41·시각장애 1급)씨. 장씨는 장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절망 속에 빠졌지만 돈독한 신앙심과 시를 쓰는 등 문예활동을 하면서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는 문단에 등단, 1996년 노인들의 설움을 표현한 '일등아 잘 있거라! 7등은'이라는 제목의 첫 시집을 출간한 데 이어 2000년에는 '꿈은 슬픔을 가로질러 자란다'는 자신의 장애극복과정을 다룬 두 번째 시집을 펴냈다. 또 점자공부에 익숙해질 무렵 다시 공부를 시작, 2002년 8월에는 경북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북대 새정치경제학 연구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장씨는 글자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컴퓨터 음성지원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논문을 청취하고 논문, 참고서적 등은 스캔해서 문자인식 프로그램으로 옮겨 내용을 파악한 뒤 논문을 쓰고 연구자료를 만든다.

19년 전 '망막색소 변성'이라는 불치병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된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김현준(49·시각장애1급) 원장은 감투가 많다.

김 원장은 지난 2003년 2월 시각장애인문화원을 개관, 초대원장이 된 이래 올해 다시 2대 원장으로 재추대됐으며 현재 희망신용협동조합 이사장직도 겸하고 있다.

경력도 화려하다. 10년 전 시각장애인들의 볼링동아리를 만들어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으며 1997년에는 시각장애인아카데미를 설립했다. 대구시각장애인연합회 수성구지회장도 역임했다. 그 공로로 2003년 10월 '흰 지팡이의 날'에 보건복지부 장관상, 지난해 11월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하지만 다른 장애인들을 위한 권리찾기에 바쁜 김 원장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그는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우울증에 시달리다 5년 뒤 기초 재활교육을 받고 안마수련원에서 2년 과정을 수료, 자격증을 따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이후 다양한 봉사활동에도 참여케 됐다.

네 살 때 시신경 위축으로 시력을 잃어버린 정태흠(40·시각장애 1급)씨. 15년 전 안마를 배운 정씨는 양로원, 경로당, 복지관 등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무료로 안마시술을 해오고 있다. 특히 중풍을 앓고 있는 노인들에게 그는 '산타클로스'와 같은 존재. 남구복지관 노인들은 매주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대구시각장애인연합회 서구지회 운영위원이기도 한 그는 "세상을 볼 수 없는 불편함보다 더 큰 고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더 힘든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데 한평생을 바치겠다"고 했다.

권중노(51·시각장애 1급)씨는 15년 전 중구 중앙파출소 옆 골목에서 '담배 좀 달라'는 고등학생과 시비가 붙어 싸우다 둔기로 머리를 맞아 두개골이 함몰되면서 시신경이 끊겨 시력을 잃어버렸다.

1년 뒤 기적적으로 깨어난 권씨는 이후 3년간 틈만 나면 자살할 궁리만 했다. 하지만 10년 전 시각장애인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마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교회에 나가 거친 심성을 다스렸다. 1남1녀를 둔 그는 "안마를 하면서 매달 생활비는 스스로 벌고 있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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