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31일, 태풍 '루사'가 강타한 성주댐. 수위는 이미 오후 5시10분쯤 댐 설계 홍수위(해발 187.9m)에 도달했고 10분당 20cm씩 가파르게 상승했다.
오후 5시50분. 댐관리사무소가 공중파 방송으로 '댐 붕괴 위험'을 알리고 주민 대피령을 내렸다.
비가 멈추지않을 경우 135분 뒤에는 수위가 댐 범람수위(해발 191.5m)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었다
댐에 가둬둔 3천여만t이 일시에 하류지역을 덮칠 경우 천문학적인 피해가 우려되면서 가천·수륜면, 고령군 주민 1만2천여 명은 탈출길에 올랐다.
공무원과 경찰이 동원한 버스를 이용해 고지대 학교와 체육관 등으로 옮긴 주민들은 생사의 위기감 속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다행히 빗줄기가 가늘어지면서 댐 범람수위보다 1.3m 낮은 190.2m를 정점으로 수위가 내려가 간신히 붕괴 위기를 넘겼던 성주댐(성주군 가천면) 인근 주민은 이같은 '악몽'을 다시 꾸지않아도 될 것 같다.
3년간 국비 117억 원을 투입한 댐 보강공사가 최근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보강공사로 댐 높이는 기존 60m에서 2.6m 더 높아졌다.
댐 수위를 사전조절하는 비상수문과 터널형 비상방수로도 새로 설치했다.
댐 인근 야산을 터널로 뚫어 만든 길이 571m의 비상방수로는 강우예보가 있으면 48시간 전에 저류된 댐 물을 하류 하천으로 흘려보낸다.
댐 유효저수량의 60% 수위까지 사전에 조절할 수 있다는 게 '비상게이트'의 장점이다.
댐 진수지(물을 방류하는 곳)와 발전소 등 태풍으로 파손된 댐 시설물들도 전면 보수를 끝냈다.
이에 따라 댐 총저수량은 기존 3천824만t에서 4천749만t, 홍수조절량은 636만t에서 2천693만t, 최대방류량은 1초당 800t에서 1천721t으로 늘어났다.
농업기반공사 강구덕 성주지사장은 "댐 기능보강으로 설계강수량이 기존 239mm에서 616mm로 크게 증가했고 이상강우가 예상될 경우 비상게이트로 48시간전에 댐 수위 사전조절이 가능해 댐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누구보다도 댐 보강을 환영하는 이들은 당연히 태풍으로 공포와 불안에 휩싸였던 댐 하류 성주군 가천·수륜면과 고령군 4천가구. 가천면 중산리 윤을주(47)씨는 "폭우에다 댐 방류, 강풍까지 휘몰아쳐 식당 건물과 대지 230평이 순식간에 휩쓸리는 광경을 보면서도 대피할 수밖에 없어 억장이 무너졌다"며 "다음날 새벽까지 한 숨도 자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고 회상했다.
당시 성주댐 1일 강우량은 416.5mm로 대구기상대 관측이래 최고이자 기상대 추정의 '1000년 빈도' 성주댐 강우량 288.8mm를 훨씬 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 가천면 주민대피작업을 마무리했던 김상억(47·수륜면 총무담당)씨는 "댐에서 4km 떨어진 면 소재지는 위험방송이 나간 직후 전기·전화가 끊기고 곳곳의 도로·다리마저 끊겼다"며 "주민대피 뒤 해발 500m 지점인 이양재(47)씨 집에 '임시 면사무소'를 설치해 밤을 샜다"고 말했다.
초비상에 돌입한 성주댐관리사무소 직원 6명도 악전고투를 겪긴 마찬가지. 이날 오전부터 방류량 조절을 하던 농업기반공사 성주지사 황동규(55) 과장 등은 오후 6시30분쯤 내려진 철수지시를 거부하고 댐에 남았다.
황 과장은 "전화마저 불통된 뒤 '걸어서라도 빨리 철수하라'는 휴대폰 지시가 떨어졌지만 댐을 사수하기위해 빠져나오지 않았다"며 "수위가 내려간다는 소식에 직원들이 서로 얼싸안고 환호의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한편 뒷날 정부 재해조사에서 댐 범람을 막는데 큰 공을 세운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던 직원들은 다음날부터 주민들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하루밤 새 폐허로 변한 수십만 평의 농경지와 가옥을 접한 주민들은 댐 방류량을 늘려 발생한 '인재'라며 연일 항의 시위로 성주댐관리사무소를 몰아 세웠다.
기반공사측은 "성주댐 유입량이 하류로 흘러갔다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피해가 발생했으며 댐 상류지역인 성주군 금수면과 김천시 증산면 피해가 하류지역보다 5배 이상 되는게 댐 기능을 증명한다"고 설득했으나 일부 주민들은 댐 철거를 주장하는 등 강경하게 맞서기도 했다.
성주·강병서기자 kb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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