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인력 더블갭, 해결책은?

이런저런 연고로 취업 부탁을 많이 받는다.

마침 필자도 금융분야 전문인력을 찾고 있던 터라 관심을 가지고 이력서를 살피게 된다.

하지만, 면접을 해 보기도 전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국내 유수대학이나 미국·유럽의 이름있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경력자 경우, 다니던 전 직장이 유수한 기업이 아니어서도 아니다.

전문성을 찾기가 어렵다.

일반 관리자로서 장차 사장 후보가 아닌 한, 전문성을 갖추었거나 전문가로서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이력서로는 반듯한 50여 명 중에서 제대로 된 전문인력 후보 1명을 찾아낸 기쁨은 흙 속에 진주를 찾아낸 것보다 더하다.

이 반대 측면으로 인천 남동공단에서 기계공구를 제조하는 중견기업 사장의 구인난 호소가 있다.

이 사장이 취업 후보자를 만나보면 역량이나 기술에 비춰 지불할 수 있는 적정 보수보다 훨씬 높은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공단에서, 그것도 서울이 아닌 지방에 위치한, 유수 대기업도 아닌 중견기업에서 일하면 장가 가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취업을 꺼린다는 것이다.

대졸 취업난에 청년실업률 8%, 대학 입학정원 미달, A 은행 2천 명 감원…. 사람이 남아돌고 있는데, 웬 구인난이냐고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 경제는 지금 구인난과 구직난이 공존하고 있다.

그것도 심각한 정도로.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역량 및 기술격차이고 다른 하나는 가격 및 근로조건 격차이다.

구직자가 보유하고 있는 역량 및 기술이 구인자가 필요로 하는 그것과 차이가 나고, 구직자가 받고 싶은 보상수준이 지불하고자 하는 보상수준과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러한 더블갭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첫째로, 1인당 소득 1만5천 달러 수준에 미달하는 보수와 근로조건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은 이를 맞출 수 있는 해외로 사업장을 옮겨 가는 길 외에는 없다고 본다.

정부와 관련 협회 등은 이들 기업을 무리하게 붙들지 말아야 한다.

비교우위 변화에 따른 동아시아 역내 국제분업구조의 변화를 억제함으로써 가격 및 시장을 왜곡시키기보다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해외 이전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둘째로, 기존의 성장주력산업과 함께 선진한국경제의 한 축을 지탱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문서비스업의 급부상에 대비해야 한다.

전문서비스업을 또 하나의 전략산업화하지 않는 한 지속 가능한 성장은 어렵다고 본다.

디자인, 금융, 물류, 회사관련 법률, 문화와 여가 콘텐츠 등 전문서비스업 발전을 위하여 관련 분야 전문인력이 원활하게 공급돼야 함은 물론이다.

제대로 된 전문인력 구하기가 힘든 상태에서 이러한 추가적인 수요까지 고려하면 전문인력 태부족 현상은 이미 개별 기업 차원에서 해결하기 힘든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예컨대, 리스크 관리, 자산운용 등 금융전문인력의 경우 우리나라는 전체 금융계 종사자 중 2.3%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6.5%와 16.4% 대비 3분의 1 내지 8분의 1 수준이다.

동북아 금융허브를 지향하는데 금융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극복해야 할 핵심과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전문인력을 키워 내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하여 실행에 옮겨야 한다.

셋째로, 이를 위하여 기업, 대학을 비롯한 교육 및 연수기관, 개인 노동자 및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각 역할과제를 직시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국이 동아시아 분업구조 전환기에 선진경제시스템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대학들은 교육 콘텐츠를 모듈화하여 시장수요에 부응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서 시장과의 역량 및 기술격차를 최소화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관련 산업이나 직무에 대한 전문역량 함양만으로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갖추기 힘들다.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나 논리적인 추론법 등 기본역량 함양을 무시할 경우, 모래 위에 집 짓는 식의 일부 직업교육훈련기관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또 개인 노동자들은 미래 자신의 경력개발계획에 따라 전문가로서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기본 및 전문역량 함양에 오로지 힘써야 할 것이다.

정부는 과거의 생산요소 투입형 경제성장책을 재현하거나, 인기 영합적인 보조금 정책 등 땜질식 경기처방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한국경제의 체질혁신을 통한 구조전환을 영원한 미제로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업들은 스스로 직원들에 대한 전문직군별 경력관리를 통하여 끊임없이 변하는 시장수요에 필요한 역량과 기술을 갖춰나가야 한다.

당장의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교육훈련에 대한 적절한 투자와 성과주의 문화를 제대로 정착시키는 기업만이 시장경쟁에서 이기고 생존할 수 있다.

구직난과 구인난이 공존하는 딜레마를 해소하는 데 요술방망이는 없다.

당사자인 기업과 노동자는 물론 대학과 정부가 기존의 관행을 떨치는 과감한 자기혁신에 나서는 길 외에 선택은 없다.

부탁받는 모든 이력서를 회사 인사카드로 옮길 수 있을 때, 필자는 인사팀 직원과 함께 퇴근길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즐기고 싶다.

최명주 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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