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찰이 한순간에 재로 변했다.
지난 식목일 TV를 지켜본 국민들 중 화마에 휩싸인 동해안 민가들과 낙산사 원통보전(대웅전), 녹아내린 조선시대 동종(보물 제479호)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국에서는 이번 낙산사 피해액을 약 30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문화재는 한번 소실되면 영원히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가치를 가늠하는 자체가 무용하다.
다행히 이번 사태에도 국가지정문화재 3건 중 건칠관음보살좌상과 칠층석탑 등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아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점은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가 앞으로도 계속 자연재해에 아무런 대책 없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지진과 화재, 홍수 등 자연재해가 늘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아직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대비책을 면밀히 강구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다.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우리가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내는 근본 대책 마련을 게을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해인사나 불국사, 부석사 등 전국에 산재해 있는 국보급 건축문화유산에 대한 처방전은 소화전이나 소화기가 고작이다.
전국 13개 주요 사찰 중 화재 발생 후 소방차가 10분 내 도착할 수 있는 곳은 4곳뿐으로 아예 속수무책 상태이다.
지진 등 자연재해가 빈번한 일본의 경우 1940년대 호류지(法隆寺) 금당 화재를 계기로 모든 사찰에 전기 시설을 없앴고, 나라의 도다이지(東大寺)는 경내 곳곳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와 사정이 다르고 그에 따른 불편도 따르지만 적극 검토해 볼 만하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문화재 보존이나 방호대책을 게을리하거나 이에 투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
기록에는 몽골 침략 때 경주 황룡사가 전소하면서 '장륙존상'이라는 거대한 불상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고 한다.
요즘 국민이 황룡사 복원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지만 한번 소실된 문화재는 다시 복원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황룡사를 복원하려 해도 고증하기 힘들고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이 예에서 보듯 이 시대의 문화재 소실은 후손들에게 재앙이나 다름없다.
이번 낙산사 화재를 계기로 문화유산 정책을 총괄하는 문화재청이나 불교계에서 성물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는 방안을 짜내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이번 화재와 같은 천재지변 혹은 그에 가까운 사태에는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조계종에서 7일 사찰 방화선과 소화전, 방화 벙커 설치 등 긴급사태에 대비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낙산사의 경우처럼 목조 건물의 경우 한번 불이 옮겨 붙으면 불길을 잡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각 사찰들이 상대적으로 방재 시설이나 보안 장치가 양호한 성보박물관을 잇따라 건립, 문화재와 귀중 자료를 안치하고 있으나 만에 하나 불가급의 재해가 닥칠 경우 한꺼번에 모두 잃을 수 있는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그나마 문화재 소장 일제조사와 DB화 작업 등 정밀한 자료정리가 재해를 수습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은 다행이다.
문화재청과 조계종은 최근 합동으로 강원도 일대 소재 사찰문화재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내 이번 화재에 문화재청이 낙산사 소장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를 즉각 제공해주고, 동종 복원도 가능해졌다는 것은 문화재 보존에 대한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재난에 대비한 갖가지 묘안을 짜내야 한다.
한 두 가지 한정된 대비책보다는 사찰이나 주요 건축물 주변에 방화선을 만드는 등 돈이 들더라도 삼중사중 방책을 마련한다면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이번 화재의 교훈은 평소 엄격하게 점검하고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자세다
국민 모두가 문화재 보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면 항구적인 방재책에 버금가는 대비가 될 수도 있다.徐琮澈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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