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기고-우리 시대의 희망이었던 그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추도사

인종과 국가와 종교가 빚어낸 모든 이념과 갈등을 넘어서서 인간을 가장 따뜻이 사랑했던 당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분은 우리 시대의 희망이고 정신적 표양이었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지난 세기,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사회정의와 평화를 위해" 앞장서 헌신함으로써 그분은 이 세상 한가운데 서서 하느님을 선연히 증거하셨다.

1920년 폴란드의 작은 마을 바도비체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는 시를 쓰고, 나치 점령하에서는 노동자 생활을 하며 지하 극단에서 연극에 참여하여 파시즘에 저항했던 카롤 보이티야. 2차대전 후 공산 치하에서는 전체주의 억압 체제에 시달리면서도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크라코프 지하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946년 사제로 서품되고, 1978년 교황으로 즉위하기까지 그분은 이 시대의 비극과 고통을 통해서 시대의 징표를 읽었던 것일까. 전쟁과 격동의 시대에 평화와 자유, 화해와 사랑을 끊임없이 역설하셨다.

종교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몸소 화해를 실천하였고, 현대 사회의 노동문제, 신세대인 청소년에 대한 애정과 관심, 새로운 위기로 대두되는 생명문제 등에 대해 미래를 내다보는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셨다.

그분은 세계 곳곳을 찾아 불화와 억압이 있는 곳, 전쟁과 폭력이 있는 곳을 불꽃처럼 가로질러 오신 것이다.

우리가 더욱 잊을 수 없는 일은 1984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사실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그분은 엎드려 땅에 입을 맞추면서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이라고 외쳤다.

전쟁과 분단의 비극으로 깊이 상처입은 이 고난의 땅을 찾아와서 103위 순교성인을 시성함으로써 한국은 거룩한 영광의 땅이 되었다.

특히 대구를 방문하고 이 고장에 사는 불우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임으로써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뚜렷이 제시하셨다.

그분은 1989년 다시 한번 이땅에 오셔서 세계성체대회를 거행함으로써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정과 아물지 않는 분단의 상처를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로 쓰다듬어 주셨다.

모든 이를 사랑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여 위대한 영혼으로 빛났던 분이여. 우리가 당신의 가르침과 표양을 따라 새롭게 변화되어 당신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당신을 떠나보내는 우리는 사람의 정에 이끌려 주님께 매달리며 눈물 흘리나이다.

하느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민족의 벗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천상영복과 영원한 안식에 들게 하소서. 권국명 시인·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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