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통해 소설가 오정인(吳貞仁. 57)의 인물정보를 검색하자 생활신조난에 "나는 여신(女神)이다"라는 희한한 글이 있었다. 꿈을 먹고 사는 사춘기 소녀라면 모를까,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런 엉뚱함은 무슨 의미일까.
"태어나서 죽는 과정이 시작에서 끝이 아니며 현실은 중요하나 안달할 필요는 없다. 아둥바둥 한다고 이루어지는게 아니고 어떤 형태로 살던 다음에 어떤 연을 맺을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깨닫는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여신이고 성자이다" 알듯 모를 듯한 설명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소중하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대구 봉산동에서 약국집 딸로 경북여고를 나와 계명대 간호학과를 다니다 결혼,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러다 나이 마흔이 돼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첫 소설이 재벌가와 관련된 이야기로 알려진 '유리성'이다. 재벌가 이야기라는 소문이 돌면서 여기저기서 책 주문이 밀려와 흥행으로는 성공작이었다. 출판전 해당 기업 쪽에서 거액을 제의했으나 뿌리쳤다. 그러나 "내 글로 상처받는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에 영화나 드라마를 찍자는 제의는 거절했다.
소설을 쓰면서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방송 작가로도 활약했고 여기저기 신문에 칼럼을 썼다. 2년전 노무현 정부 출범때 어느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대통령을 비판한 칼럼에 덤벼든 네티즌의 반댓글은 아직도 남아 있다. "크게 애 먹은 것 없다"고 덤덤해 하지만 아마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을 터다. "대구 출신이라고 강한 보수로 단정하는 이도 있겠지만 건전한 진보를 위한 보수주의자"라고 자신을 설명한다. 이상주의적인 운동권 사고는 위험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열심히 쓴다"는 것 외에도 "쓰고 싶은 주제를 쓰고 싶을 때 쓴다"는 것을 자신의 글쓰기 특징으로 대답한다. 아내, 남편이나 부모 자식간의 문제 등 가정사 이야기는 아예 쓰지 않는다. 나 아니라도 남들이 더 잘 쓴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남이 쓰지 않는 부분을 기록하고 싶다. 아직 종교가 없지만 신앙문제를 다루고 싶어 한다. 얼마전에는 출판사도 차렸다.
글쓰기가 힘든 일인 때문일까, 글 쓰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린다. 그러나 글쓰기가 돈이 안되는 요즘, 특히 가정을 꾸리는 전업작가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대신 가끔씩 '바그너 협회'라는 음악감상 모임에 나간다. 운동은 못하는 게 없을 정도다. 대통령더러 골프치지 말라고 한 죄로 골프백을 아예 남에게 줘버렸다.
대구 이야기가 나오자 톤이 올라간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모임도 활발하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전략을 짜는데 대구 사람들은 오히려 옆에 있으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며칠전 가서 본 대구 살림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눈이 핑핑 도는 서울생활에서 바라본 대구는 옛날 그대로였다. 이대로 가면 꼴찌 신세를 계속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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