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밀리언달러 베이비'

미국의 '시아보 사건'으로 안락사에 대한 법, 종교, 정치적 입장의 첨예한 대립과 더불어,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불꽃처럼 살다간 여자 매기, 그녀의 부성같은 존재였던 프랭키에 대한 이야기다.

매기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불우한 집안 형편 때문에 어릴때부터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가장 노릇을 한다. 불평만 늘어놓는 무능한 엄마, 교도소나 드나드는 불량한 오빠, 정부 보조금에 목을 매는 무기력한 여동생. 그녀는 가난과 절망의 반복된 고리를 끊기 위해 31세의 나이에 복싱에 도전한다. 아무 배경도 없는 시골뜨기 노처녀가 복싱을 시작한다는 것은 악조건 자체였다. 그러나 복싱은 그녀 자신을 위한 유일한 행복이었다.

프랭키. 허름한 권투 체육관을 운영하는 그는 한때는 잘 나가던 복싱 트레이너였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규칙을 고집하며, 자기 선수들에게도 강요한다. 그는 왠지 성공 직전에서 머뭇거리는 우유부단함을 보인다. 자신이 원하는 완벽주의에 여전히 결함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출세에 조급한 선수들은 그를 떠나고, 그의 우유부단과 완벽주의는 좌절과 상처로 이어진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매주 성당을 찾지만, 신앙에 확신이 없다.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반송된 편지들이다. 딸에게 매주 편지를 부치지만, 수취인 불명이다. 버림받은 사람의 패배주의와 회한이 그에게 드리워져 있다. 그의 유일한 안식은 예이츠의 시를 게일어(아일랜드 고어)로 읽는 것이다. 좋은 위스키에 얼음을 넣지 않듯, 갓 구운 레몬 파이를 아일랜드 식으로 즐기는 그에게 짙은 향수가 묻어난다. 아일랜드는 감동이나 경탄보다는 위안과 진정에 가까운, 온화하고 수줍은 아름다움을 준다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프랭키에게서 그런 아일랜드의 정취가 느껴진다. 따뜻한 사람이다.

매기가 프랭키의 체육관에 풋내기 복서로 들어오면서 이들의 기막힌 인연이 맺어진다. 매기의 출현은 회피로 일관하던 부녀간의 문제를 프랭키에게 직면시키고, 이것은 아픔이고 망설임이었다. 그러나 인생을 건 매기의 집념은 프랭키에게 두려움과 은둔을 넘어서는 용기를 준다. 프랭키는 매기에게 '모쿠슈라(나의 혈육)'라는 아일랜드어 별명을 선사하고, 이렇게 맺어진 두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매기는 승승장구하며 챔피언의 고지에 다가선다.

그러나 매기는 가장 아름답게 피었을 때, 가장 슬픈 추락을 맞이한다. 챔피언전에서 상대의 반칙으로 경추 골절상을 당한다. 매기는 숨골과 척수 손상으로 자기 호흡이 끊어지고 전신마비가 된다. 맑은 정신으로 점차 망가져가는 자신을 보는 것은 죽음보다 비참했다. 모든 영광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죽여 달라고 프랭키에게 애원한다. 매기를 받아들일 때처럼, 결별에서도 망설이던 프랭키는 매기에게 죽음은 곧 삶이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그녀를 안락사시킨다. 그때서야 매기는 영광의 기억을 간직한 채 영원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안락사에 대한 '존엄하게 죽을 권리'와 '살인'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선택에서, 매기의 죽음은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과도한 초자아를 가진 프랭키는 매기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손을 들어 주었다. 관객은 만장일치로 프랭키와 매기의 합일된 사랑을 경건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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