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 꽃을 피워대던 봄산들이 벌써 여름준비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짧은 봄을 탓하랴. 나무들은 그저 제철을 알고 꽃을 피우고 나뭇잎을 틔울 뿐이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다. 욕심에 겨워 앞서가려고만 하는 이들에게 보란듯이 정확하다.
욕심을 버리고 제 분수를 알려면 주왕산 기암(旗岩)을 조망하는 산행이 적격이다. 뾰족하게 솟은 기암은 주왕산 입구에 떡 버티고 서서 입산객을 압도한다. 우뚝 솟은 봉우리가 빼어난 절경이다.
기암을 가장 잘 보기 위해선 장군암에 올라야 한다. 출발은 광암사. 주방천~제3폭포에 이르는 길 대신 대전사를 지나 왼쪽 구름다리를 지난다. 광암사 직전에서 왼쪽 가파른 길로 40여 분 더 가야 한다. 온갖 욕심과 세상사 업보까지 짊어지고 오르는 길이니 더 가파를 수밖에 없다.
오를수록 낭떠러지는 깊어지고 앞쪽의 기암은 더 또렷하다. 수직절벽 군데군데에 소나무와 회양목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절벽에 붙어 있었을까. 생명력이 놀라울 뿐이다. 기암의 풍경에 취해 있다가 자칫 '둥근잎꿩의비름'의 아름다움을 놓칠 수 있다. 환경부 보호식물로 지정된 둥근잎꿩의비름은 발 앞의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있다. 뿌리가 약한 만큼 절대 한 뼘 이상 자라지 않는다. 제 분수를 너무 잘 아는 탓이다. 볼수록 대견한 이 식물을 어떻게 이름모를 들꽃이라고 하겠는가.
장군암 전망대에 서면 기암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래에서 보던 모습과 많이 다르다. 기암을 둘러싸고 있는 암벽은 천연요새처럼 웅장하다. 아래쪽에서 봤을 때 4개였던 봉우리는 9개로 늘어난다. 기암(旗岩)이 단순한 기암(奇岩)이 아님을 산을 오르지 않고는 알지 못한다. 숨이 턱까지 찰 만큼의 오르막을 오른 사람에게만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준다.
장군암에 올라 분수를 배운다. 기암의 절벽에 몸을 맡긴 소나무와 바위틈에 뿌리내린 둥근잎꿩의비름은 왜 욕심을 버려야 하는지를 말없이 보여준다. 억척스런 삶을 보고 싶거나, 제 분수를 알고 싶거나, 삶에 지쳐 세상사 업보를 다 벗어던지고 오고 싶다면 주왕산 장군봉을 오를 일이다. 때마침 산불방지를 위해 이 구간에 내려졌던 입산통제도 내달 1일부터 풀린다. 비경을 간직하고도 놀라울 만큼 한적하다는 것도 매력이다.
글·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사진·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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