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조기유학

서울 강북에 사는 ㅇ씨는 최근 고1 아들의 미국 유학을 놓고 고민 중이다. 아들의 성적으로는 서울 시내 비인기 대학이나 수도권 소재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다는 진학 지도 교사의 상담이 유학을 떠올리게 했다. ㅇ씨의 고민을 전해 들은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유학을 반대하지 않았다. 대신 "하루라도 빨리 보내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ㅇ씨는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어차피 아들 역시 한국에서 살아야 하는데 국내에서의 고교 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앞으로의 삶에 있어 소중한 기반을 잃을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 고교생이나 중학생의 조기 유학은 이미 한물간 유행이다. 지금은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도 유학 대열에 선다. 장기 유학이나 1, 2년 정도의 단기 전학을 가거나 대부분 영어 습득이 목적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영어 가르치기에 몰두하는 부모들에게 외국 생활을 하고 오는 학생들의 증가는 '이러다 내 자식만 낙오되는 게 아닌가'라는 불안을 안겨준다. 국내에서의 만만찮은 과외 비용도 조기유학 열풍에 일조한다.

◇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 소재 근로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조기 유학 열풍이 확인됐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230명이 조기 유학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 교육청의 자료에서는 지난해 3월부터 올 2월까지 서울에서 해외 유학을 떠난 초'중'고교생은 1만2천여명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만 하루 평균 34명 꼴로 유학 비행기를 타고 있다.

◇ 조기 유학은 자식 공부에 모든 것을 바친다는 부모들의 자식 사랑이 바탕이다. 맹모삼천(孟母三遷)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부모들로서는 당연한 결정이기도 하다.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해서라도 유학 비용을 벌겠다는 어머니나 기러기 아빠로 홀로 사는 아버지도 내 자식 생각에 모든 것을 감수한다.

◇ 그러나 장래에 대해 판단하기 어려운 어린 학생들의 인생을 좌우할 조기 유학은 따져볼 점이 많다. 스스로 무엇을 얻겠다는 목적의식 없이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 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이 뒹굴다보면 영어라도 익혀 오겠지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게다가 얻는 것이 있으면 그만큼 잃을 것도 각오해야 한다. 잃는 것이 많다면 어린 학생들의 조기 유학은 생각해 볼 점들이 적지 않다.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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