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릴레이 이런 삶-홍정선 연세대 법학과 교수

연세대 법학과 홍정선 교수(洪井善·55)는 솔직 담백하다. 첫 인상이 이웃집 아저씨같고, 장난기가 눈가에 묻어나며 천진스럽기까지 하다. 이화여대와 연세대를 합쳐 23년간 강단에 섰지만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유를 묻자 "살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좌우명이 뭐냐는 질문에도 "따로 없다. 열심히 살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50년 경북청도에서 태어났지만 그해 대구로 이사왔다. 경북고(50회)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73년), 고시를 보지 않고 학문의 길에 들어섰다. 동문수학한 동기로는 삼성SDI 김순택 대표와 건국대 이상태 교수, 대구가톨릭대 이홍욱 교수, 연세대 이재민 교수가 있고 법조계에는 김상희 법무부 차관, 장윤기 창원지법원장, 박일환 제주지법원장 등이 있다.

대구 출신이자 국내 헌법학계의 거목인 서울대 김철수 명예교수가 스승이다. "학부 시절 3학년 때 고시를 친 적은 있지만, 스승의 권유로 진리와의 경쟁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정치적 계획의 헌법학적 고찰')도 김 명예교수가 직접 지도했다. 김 명예교수가 3공 시절부터 각종 입각 제의를 거절하고 학문의 외길을 걸었듯, 옆 길 둘러보지 않고 한 길만 갔다.

하지만 전공영역은 다르다. 스승의 관심사는 헌법이지만 홍 교수는 행정법을 택했다. "행정법은 헌법의 구체화된 법이다. 이념적 성격이 강한 헌법보다는 실용적, 실천적 성격이 강한 행정법에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홍 교수는 국내 행정법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그가 쓴 '행정법론(상·하)'는 지난 92년 초판을 찍은 이래 올해 13판을 찍을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행정법 특강'은 4판째고, '지방자치법학' '지방자치법주해'도 법대생이나 고시생들에겐 필독서다. 다른 법학서적과는 다르게 학설과 판례를 명료하게 잘 정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평생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이니 자랑할 것도 없다"고 담담히 말한다.

그는 학계에서 꼼꼼한 논문심사로 정평이 나있다. 정실에 빠지지 않아 홍 교수의 말이라면 어디가도 통한다. 또 '돈 벌기위해' 정부 프로젝트 일을 하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지방자치법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지방자치법학회'도 홍 교수가 지난 2001년 5월 만들었다. "지방분권이니 자치니 떠들어대는 데 제대로 연구하는 단체가 없어" 이화여대 최승원·옥무석 교수와 백윤기 변호사 등이 의기투합, 설립했다. 현재는 교수, 변호사, 세무사 등 회원만 200여명에 이르는 제법 규모가 큰 학회로 컸다. 하지만 다음달 회장직에서 물러날 생각이다. 어느 정도 반열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대신 오는 7월부터 한국공법학회 회장일을 맡게 됐다.

요즘 그는 골치가 아프다. 지난해 7월 대법원장 추천을 받아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 위원회' 위원으로 일하면서부터다. 홍 교수는 "노동사건 심의가 정말 힘들다"고 한다. 노동운동을 어느 선까지 민주화 운동으로 볼지 구획짓기가 쉽지 않아 딜레마라고 했다. "생각을 넓게 보면,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볼 여지가 있지만···"이라며 말을 아꼈다.

홍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평생을 초학자의 심정으로 살았다"며 "20년간 학생을 가르치고 배웠지만,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고교 동기이자 화가출신 대학총장인 상명대 서명덕 총장을 다음 인터뷰 대상자로 추천했다.

김태완 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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