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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서-마당깊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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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직후는 부재의 시대였다. 우선은 의식주의 부재가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그리고 전쟁이 이데올로기의 양극화에서 비롯되다 보니까 좌익으로 집을 떠난 아버지를 가진 자녀들의 부재의식은 간과할 수 없는 사회 병리 현상이었다.

이들은 '아비' 부재에 대해 드러내놓고 얘기할 수 없었다. 아비 부재에 대한 타인의 의심의 눈초리를 그들은 '행방불명'이라는 미묘한 단어로 무마하면서 스스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단어를 자신들의 보호막으로 쳐두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들의 부재의식은 그 어떤 부재의식보다 더 질기고 혹독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인처럼 검은 사마귀를 평생 동안 얼굴에 지니고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문열이 그랬고, 김원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은 대구 장관동을 중심으로 중앙통, 칠성시장 등을 아우르는 공간을 배경으로 전쟁 직후 약 1년간의 사람살이에 대한 보고서이다. 미군이 주둔하여 새로운 외색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지적으로는 전국에서 모여든 피란민들이 어울려서 독특한 문화를 창출해가던 뿌리 없는 이들의 뿌리 내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1가구 다세대 주택의 전형인 '마당깊은 집'은 50년대를 힘겹게 살아 견딘 사람들의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삶의 기록이다. 공동변소, 냉기가 감도는 방, 가재도구 대신 사과 괘짝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던 부엌, 비가 많이 오기라도 하면 속수무책인 하수도, 자기 멋대로 왔다 갔다 하는 수도와 전기,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던 시절에 그래도 고단한 삶에서 풍기는 사람냄새 나는 정겨움이 '마당깊은 집'에는 차고 넘친다.

그 정겨움은 힘겨운 드난살이의 고통 속에서 빚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멀지 않은 '옛날' 바로 내 아버지, 어머니 혹은 형님, 누나가 겪었을 '더러운 시절'에서 건져 올린 것이기 때문에 더 정겹다.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하면 모든 것이 훨씬 더 풍요롭지만 그 시절의 정겨움은 이제 빈약하기 그지없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노상래 영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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