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지도자 탓만 할 일이 아니다

'민족대통합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대표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이 오는 1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국민대토론회를 열어 YS·DJ 두 전직 대통령의 재임 시절 업적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더욱 중요한 연구 주제는 'YS 추락'의 이유를 분석하는 것이다.

'추락'이라는 말을 써도 좋을 만큼 YS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인색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하다.

한국갤럽의 2004년 6월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대대통령'에서 1위는 박정희 47.9%, 2위 김대중 14.3%, 3위 노무현 6.7%, 4위 전두환 1.7%, 5위 김영삼·이승만 1.0% 등이었다.

또 경향신문 2005년 1월 1일자에 보도된 30대와 60대의 '대통령 평가' 여론조사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들의 국정수행능력 지지도는 박정희 67.0%, 김대중 19.3%, 전두환 6.8%, 노무현 4.8%, 이승만 0.8%, 김영삼 0.7%, 최규하 0.2% 등이었다.

아무리 YS에게 많은 문제가 있다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가혹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역사학자 최상천씨가 잘 평가했듯이, "김영삼은 군사정권의 뿌리를 뽑고 자유화의 길을 텄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감옥에 보내고 하나회를 해체했다.

감시·고문·테러도 없앴다.

정치민주화를 위해 지방자치를 실시했고, 경제정의를 위해 금융실명제도 시행했다.

5년 임기의 정권이 이 정도로 독재체제를 청산한 것만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

물론 위와 같은 평가에 모든 사람들이 다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1.0%와 0.7%는 해도 너무했다.

왜 그렇게 된 걸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겠지만, 그런 가혹한 평가는 YS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마 YS처럼 퇴임 이후 자신이 쌓아놓은 업적을 훼손하기 위해 스스로 애를 쓴 지도자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가만있으면 자신이 대통령 시절에 이루었던 업적에 대한 정당한 평가도 이루어질 텐데 그는 퇴임 후에 전직 대통령다운 처신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끊임없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으며, 과거 자신의 민주화 투쟁 경력을 의심케 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건강이 너무 좋은 탓인지 과거 권력투쟁을 하던 시절의 혈기만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지난해 11월엔 미국에 가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적화통일 된다"고 주장했는가 하면, 올 4월엔 자신의 재임 시절 '일본 버르장머리' 발언을 자화자찬하면서 "그때 일본이 꼼짝 못했고, 망언한 의원 다섯은 목을 잘라버렸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재임 시절 큰 일들을 했으니 자신이 이룬 업적이 계속 발전할 수 있게끔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경륜과 지혜를 제공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는 너무도 정략적인 보수 신문들이 좋아할 말만 골라서 하느라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와 체통마저 망가뜨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과거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로부터도 외면을 받는 비극에 처하게 된 것이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YS에게 충성을 하는 측근 인사들의 행태다

이들은 YS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끔 충언을 한 게 아니라 그의 박수부대 노릇 하기에만 바빴으니 어찌 면책될 수 있으랴. YS를 지지했던 진보적 지식인들마저 입을 꼭 다물었다는 건 놀랍게 생각해야 할 사실이다.

그들 중 공개적인 충언을 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도 이를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노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으로 불리는 어떤 분이 노대통령에 대해 "너무 잘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말한 걸 보고 실망스럽고 안타까웠다.

나라를 생각해야지, 지금 우리가 무슨 '편싸움' 하자는 게 아니잖은가. 대통령의 사기 진작을 위한 선의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그래도 공사(公私) 구분은 해야 할 게 아닌가. YS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한다.

지도자 탓만 할 일이 아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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