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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막막할땐 고향 직지사 찾아"…방송작가 박진숙(57)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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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通俗)은 시시하고 그저그런 것일까. '대중의 세속적이고 천박한 취향에 붙쫓아 고상한 예술성이 부족한'이란 사전적 해설처럼 통속적인 모든 것은 뻔한 일로 격하된다. 방송극작가 박진숙(朴眞淑. 57)은 통속을 "세상을 통한다"로 해석한다. 당연히 의미가 크다. 방송 일은, 삶의 가치가 그저그런 뻔한 세상사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글쓰기 시작은 소설이었다. 결혼 7년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장편소설 공모 당선으로 글쟁이로 나섰다. 지글지글대는 가슴속 열기를 바깥으로 꺼내는 일에 소설은 안성맞춤이었다. 중·고교 학창시절 전국 백일장을 휩쓸고 다닌 문학소녀의 꿈이 딸 둘을 낳은 엄마가 되고서 이뤄졌다.

방송국 PD가 그를 찾아 오기 전까지는 소설만이 꿈이었고 소설로 끝장을 보려했다. 단편을 각색, 드라마로 찍자는 제의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방송일은 새로운 세계였다. 소설에서 느끼지 못한 재미도 있었다. 내친김에 김원일 원작 '마당깊은 집'을 각색했다. 방송작가로서 본격적인 시작이었고 이 일로 '백상예술대상 TV극본상'을 받았다. 신출내기 작가에게 과분한 상이었고 그게 탈이었다. 아예 방송작가로 나섰다.

90년대 초반 대박을 터뜨린 드라마 '아들과 딸'로 유명 작가의 반열에 섰다. 쌍둥이 아들과 딸의 이름 '귀남'과 '후남'은 당시 유명인사가 됐다. 어린 시절 딸 많은 이웃집의 아들 사랑이 힌트였다. 드라마 계획안을 처음에는 모두 반대했다. 누구나 다 아는 흔해 빠진 이야기로 성공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가장 평범한 곳에 가장 비범함이 숨어 있었다. 주인공 후남이 나중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작가가 되자 시중에선 드라마 소재가 그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들 많은 집의 귀한 딸이었다.

소설가에서 방송작가로 변신한 성공사례로 꼽히는 그를 이젠 아무도 소설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방송작가로서의 자부심이 적잖다. 남이 알아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설을 쓸 때까지는 딸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던 엄마(83)가 드라마를 보고 딸자랑을 하고 다녔다. 그런 엄마에게 용돈을 쥐어 주는 기쁨도 컸다.

방송작가 중에서는 원로급이다. 그만큼 배우들도 많이 봐 왔다. 대성하는 배우들은 나름의 특징이 있었다. 겸손하고 성실했다. 하루에 열번을 만나면 열번을 인사하고 한 장면을 찍기위해 몇시간을 연습하고 기다리던 무명들이 지금은 최고 스타급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학기부터 광주 조선대학교에 출강한다. 방송문학을 가르친다. 이틀 강의를 위해 일주일에 사흘은 광주에서 산다. 김천이 고향으로 대구 신명여고를 나왔다. 경희대 졸업 후 4년간 김천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서울생활이 살아온 삶의 반을 넘고 있다. 그러나 삶이 막막할 때면 김천 직지사 산길을 찾는다. 어릴적 보다는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고향 산길은 막막한 삶을 풀어준다. 딸만 둘이다. 아이들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속박하지 않는다. 인터뷰를 위해 집으로 찾아 간 날, 사는 그대로 손님을 맞아 준 그에게서 받은 '자유' 라는 인상처럼 가족관계도 자유로와야 사랑이 굳어진다고 믿는다.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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