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리핀人 마리리따 '눈물'의 삶

한국에 온 지 만 5년된 필리핀 여성 마리리따 베르뚜가소(29.중구 동인동)씨는 5년전 양모(39)씨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꿈에 부풀었었다.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오면서 가졌던 '돈도 잘 벌고, 한국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살고자 했던 희망'이 실현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

하지만 5년여의 결혼 생활은 처음 가졌던 꿈이 '힘들더라도 고국에 있을 걸 왜 한국에 왔을까'라는 후회로 바뀌게 했다. 남편은 평소에 잘 하다가도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했고 집안 살림도 갈수록 어려워져만 갔다. 1년에 한번씩은 고국에 돌아가서 성공한 모습을 가족.친지들에게 보여주겠다던 다짐은 한번도 실현하지 못했다.

그래도 남편을 믿고 지혜(5), 서혜(3) 두 딸, 갓 돌을 넘긴 아들과 함께 '언젠가는 나아지겠지'라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살았는데 한달전 그것도 산산조작이 나버렸다. 사업실패로 인한 빚 때문에 남편이 지난달 9일 집에서 목을 매 숨졌기 때문. 딱한 처지를 보다 못한 인근 교회에서 약간의 도움을 주어 겨우 네 식구의 목숨은 연명하지만 앞으로 세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 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는 17일 오후 6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대구지부가 경북대에서 마련한 '국제결혼한 이주 여성들의 삶과 인권'세미나에 참석해 심경을 털어놓으면서 계속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이날 세미나의 발제 및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외국여성의 인권에 대한 국민적 각성과 대책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정일선 경북여성개발원 수석연구원은 "마리리따씨의 삶은 한국남성과 결혼한 외국여성들의 어려운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며 "그동안 우리사회가 애써 외면해온 이들에 대한 반인권적인 실태를 파악한 뒤 법적, 제도적 지원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선아 변호사는 "현행 국적법에는 혼인 후 2년이상 국내에 거주하는 등 일정조건을 갖추고 법무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며 "외국여성들이 빠른 기간안에 건강한 가정으로 자리잡도록 하기 위해 이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한해동안 한국남성과 혼인을 한 외국여성은 2만5천여명, 이중 대구.경북지역은 1천800여명이다. 국적별로는 중국이 1만8천여명으로 70%가까이 차지했으며 베트남, 일본, 필리핀이 다음으로 많았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사진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대구지부가 17일 경북대에서 연 '국제 결혼 이주 여성들의 삶과 인권' 세미나에서 이주 여성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는 현실을 증언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