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마, 같이 공부해요"

아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는 단연 '공부해라!'다. 부모들은 이를 너무나 잘 알면서도 어쩔 도리없이 다그치지만 이 잔소리로 성적이 올랐다는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커갈수록 반감만 깊어지게 할 뿐이다.

대구시 교육청이 운영하는 국제이해교육센터에서 강좌를 듣는 학부모들은 '공부하라'는 잔소리 없이 아이들을 공부로 끌어들이는 비법을 찾았다. 바로 공부하는 부모가 공부하는 아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달은 것.

아이와의 관계도 훨씬 좋아졌다. 공부하는 아이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면서 상처주는 말보다 격려하는 말이 많아진 덕분이다. 아이도 공부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이다. 뒤늦게 찾아온 공부의 매력에 푹 빠진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휴~공부 정말 어려워요

공부를 해 본 지 짧게는 십수 년, 길게는 이십 년이 넘는 엄마들이 다시 책상에 앉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원어민과 대화를 해야 하는 어학 강의는 엄마들에게 두려움 그 자체. 두시간의 수업이 길기만 했다.

수업을 들은 지 꼭 일주일이 됐다는 김금희(34)씨는 "처음에는 문화체험으로 잘못 알아듣고 참가하기로 했는데 원어민 강사가 있어 깜짝 놀랐다"며 "며칠 동안은 입도 떨어지지 않고 식은땀만 흘렸다"고 털어놨다.

힘든 수업을 들으면서 엄마들은 아이의 어려움을 십분 이해하게 됐다. 일 주일에 세 번씩 듣는 단 두 시간의 수업도 이처럼 힘겨운데 하루 종일 학교 수업에 학원, 과외에까지 얽매여 사는 아이의 기분을 진심으로 헤아리게 된 것.

이토라(39)씨는 "공부를 다시 시작한 후로는 미안해서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칠 수가 없게 됐다"며 "그렇다고 공부를 안 시킬 수 없는 엄마의 입장이라 어쩔 수 없이 학원으로 아이를 떼밀지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아이의 공부습관까지 O.K.

엄마가 공부를 시작하자 이제는 '공부하라'고 재촉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책상에 앉는다. 공부하는 엄마를 보면서 아이들까지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김순희씨는 "영어 수업에 다녀온 날은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가 '엄마, 오늘은 뭘 배웠는지 가르쳐 줘'하며 굉장한 관심을 보인다"며 "아이 때문에 복습까지 철저히 하고 있다"고 했다.

늘 닥달만 하던 엄마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이자 아이들은 신이 났다. 조선희(43)씨는 "중 3인 큰아이가 유용한 영어표현 100문장 등을 찾아주고 발음도 고쳐주는 등 선생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며 "가끔은 엄마도 시험을 봐서 시험이 얼마나 지긋지긋한 건지 알아야 한다며 놀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손효실(42)씨도 "중학교 2학년인 아들에게 중국어로 말을 걸면 아이는 뒤지기 싫어 영어로 대답을 해 결국 3개 국어가 뒤죽박죽이 되곤 한다"며 "엄마가 중국어를 배운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엄마도 공부하는데 학생인 내가 놀 수는 없다'며 스스로 책상에 앉을 때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 공부하게 해 주세요

의외의 효과를 얻자 처음에는 학부모 어학 강좌에 참석하기를 꺼렸던 엄마들도 이제는 '제발 공부하게 해 달라'고 난리다. 지난 3월 시작된 국제이해교육센터 학부모강좌 1기생인 조선희씨와 서은주(43)씨는 벌써 석 달째 수업을 듣고 있다. 손효실씨는 영어에 이어 중국어 강좌까지 반을 옮겨가면서 열심이다. 조씨는 "아이와 남편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데다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한다는 기쁨도 상당하다"며 "이렇게 좋은 공부를 왜 진작 시작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문제는 한 번 공부의 매력을 맛본 엄마들이 계속 공부하길 원하면서 국제이해교육센터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 당초 계획은 기수당 80여 명의 학부모를 초청해 10회의 강좌를 함으로써 외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자는 차원이었지만 장기 수강을 희망하는 엄마들이 늘어나면서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려는 학부모들의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는 우려도 생겨나고 있는 것.

윤형배 국제이해교육센터 소장은 "일단 엄마와 아이들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것만으로도 당초 목적을 달성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학부모들의 요구를 뿌리치기가 어렵다"며 "오는 9월부터는 강사진과 강의실을 확충해 가능한 한 많은 학부모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글·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사진·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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