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기주도형 학습 습관 기르기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서양 속담은 학습과 생활 전반에서 '자발성'과 '자립심'이 결여된 자녀를 둔 가정에서 한 번 새겨볼 만한 말이다. 강제로 학원에 보내고 책상 앞에 앉힌다고 자녀가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와 성취 욕구가 없으면 어떤 것도 소용이 없다. 반면 자기주도형 학습 습관을 가진 학생들은 부모의 간섭이 필요 없다. 그들은 항상 여유가 있으되 무서운 집중력으로 공부하며 생활을 즐긴다. 가정에서는 어떤 학원에서 몇 과목을 듣게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면 자기주도형 학습 습관을 길러줄 수 있을지를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Y씨의 두 자녀는 지금 명문대에 다닌다. Y씨는 큰 아이가 중2 때부터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집중적으로 장편 소설을 읽게 했다. 삼국지, 열국지, 수호지, 이병주의 '지리산', 김주영의 '객주',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박경리의 '토지', 홍명희의 '임꺽정' 등을 차례로 읽게 했다. 마지막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게 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을 수 있으면 어떤 책도 끝까지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인내심과 독파능력, 자기주도형 학습 습관을 배양하는 데 장편소설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그는 말한다.

P씨는 대학 2학년의 아들을 하나 두고 있는 사업가이다. 그는 아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어떤 일이 있어도 일요일에는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일요일 오전이나 오후 중 한나절은 반드시 운동을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했다. 일요일마다 부부도 산행을 했다. 부모 자식이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함께 쉬는 날이기 때문에 서로 간섭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를 푹 쉰 아이는 주중에 스스로 알아서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L씨의 아들은 현재 고2이다. 아이가 중1 때 컴퓨터에 지나치게 빠져 반에서 1, 2등 하던 성적이 10등 밖으로 밀려났다. 중3 겨울방학 때 전문가와 상담한 후 아들의 공부방에 있는 컴퓨터를 없애고 거실에 가족 공동의 컴퓨터를 놓기로 했다. 학습 자료를 찾아볼 때를 제외하고는 주중에 컴퓨터를 켜지 않기로 약속하고 실천했다. 주말에는 2시간 정도 컴퓨터를 이용하도록 했다. 또 공부할 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습관도 고쳤다. 1년 후에는 원래의 성적을 되찾게 되었다.

◇ 자기주도형 생활 태도 기르기

많은 부모들이 교육을 투자로 이해한다. 자녀에게 돈을 많이 투자하고 보다 관심을 갖고 관리하면 투입(input)에 비례한 산출(output)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투자는 생산 설비에 대한 투자와는 다르다. 자녀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학생의 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태져야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교육의 생산성은 경제적 투자와 부모의 관심에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맹목적인 투자는 부모의 의도와 달리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고 자기주도형 학습 습관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현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고 그에 맞춰 적절히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 학원의 역기능

교사들은 학생들이 일정한 학습량을 독파하는 능력이 과거보다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과거에는 우수한 학생들 대부분이 일단 책을 손에 잡으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반드시 끝을 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 수업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거의 대부분 일정을 혼자 관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우수한 학생이라고 해도 학습의 상당 부분을 남으로부터 도움 받고 관리 받는다. 과목마다 공부하는 요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학원이나 과외 선생님이 정해놓은 분량만큼만 따라가는 것이 습관화 돼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생활에 익숙하다보니 무엇을 혼자 계획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됐다.

▶ 인터넷과 시청각 자료

이미 우리는 영상 문화에 지나치게 노출되고 익숙해져 있다. 많은 학생들이 그림 없이 활자만 빼곡한 책을 잘 견디지 못한다. 급속한 인터넷의 보급은 학생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시청각적이고 감각적인 것만 추구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많은 학생들이 여가 시간에 인터넷을 하지 책을 읽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고차원적인 정신활동은 문자 매체를 통한 사유와 사색을 통해 이루어진다.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화면을 보다가 책을 손에 잡기란 대단히 어렵다.

▶ 넘치는 부모의 관심

과거에는 대부분 부모들이 바쁜 생업 때문에 자녀의 생활 전반을 일일이 간섭할 수가 없었다. 자녀들은 공부를 포함한 방과 후의 생활 관리를 스스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등'하교는 물론 학원에 오가는 등의 모든 과정에 부모가 개입하는 경우가 잦다. 심지어 학습 내용과 학습량은 물론이고 수면 시간까지 부모가 관리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할 일이 많아 지치다 보니 상당수의 학생들은 부모가 기대하는 만큼만 따라가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길들여진 자녀들이 공부와 생활을 스스로 꾸려가는 습관을 형성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 어떻게 할 것인가

빈틈없는 관리와 간섭은 단기적인 효과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일상화될 때는 자녀에게 자립심과 자발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진다. 가능하다면 일정 기간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은 채 믿고 맡겨볼 필요가 있다. 학업과 여가 시간 등을 자율적으로 관리하게 하고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과정을 거쳐야 자기주도적인 습관을 가지게 된다.

일주일 내내 학원에 보내는 것은 삼가야 한다. 집에서 노는 모습을 참을 수가 없어서 학원에 보낸다는 부모들이 많다. 이런 생각 역시 장기적으로 보면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여가 시간이 있어야 무엇을 스스로 도모할 수 있다. 적어도 토'일요일 중 하루는 학원과 과외에서 자유롭게 해야 한다. 저학년일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일단 맡겨놓고 기다려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사진: 가정과 학교, 학원을 쳇바퀴 돌듯 하는 학생들에게 자기주도적 학습 습관을 길러주기란 대단히 힘들다. 자녀의 현재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해 적절한 전략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사진은 창의성 수업을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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