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후배가 근종 제거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회복실에 오자마자 과도한 출혈 때문에 재차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게다가 링거 주사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인해 한동안 생짜로 엄청난 아픔을 이겨내야 했다. 오이꽃처럼 얼굴이 노랗게 뜬 후배는 "지옥에서 헤매다 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수술 후엔 또 가스가 안 나와 애를 먹었다면서 "아유, 삼시 세끼밥 잘 먹고, 가스 잘 나오고, 잠 잘 자는 게 최고의 복인 줄 이제야 알겠어요"라고도 했다.
가끔 병원에 가보면 세상은 온통 아픈 사람들 천지인 것만 같다. 코에 호스를 꽂고 링거병을 매단 채 핼쑥한 얼굴로 누워있는 환자들, 무슨 안 좋은 소식을 들었는지 복도 벽에 기대어 주르르 눈물 흘리는 가족들의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찌르르해진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환자들의 병실엔 하루가 다르게 활기가 돌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환자들의 병실에서는 적막감만 무겁다.
어쩌다 병원에 갔다올 때면 물혹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욕심보따리들을 몇 개씩 내려놓게 된다. 대신 감사함이 그 자리를 메운다. 휠체어 탄 환자들을 보면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걸어갈 수 있는 두 다리가 새삼 고마워진다. 어떤 음식도 모래알 씹는 것 같다는 환자들을 볼 땐 "좀 아파서 입맛이 없어봤으면, 그러면 살도 절로 빠질 텐데"하는 소리가 쑥 들어가고 만다. 튀어나오는 배 때문에 억지로 음식을 절제해야 할 만큼 365일 꿀맛인 '절대 입맛'에 오히려 감사하고 싶어진다.
태어난 지 1년 반 만에 열병을 앓아 눈과 귀가 멀고 말도 할 수 없었던 3중고의 헬렌 켈러. 그녀가 1933년 내놓은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경제공황기 미국인들의 지친 마음을 잔잔히 위로해 주고, 일상에 대한 감사함을 일깨워 준 글이다.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의 지저귐을 들어보세요. 내일이면 냄새를 잃어버릴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보세요."
불만이 목까지 차올라 지나가는 개라도 뻥 차고 싶을 정도라면, 가진 게 너무 없어 속상하다면, 세상이 온통 회색빛으로만 보인다면, 이런 방법은 어떨까. 혼자 가끔 병원에 가서 조용히 지켜보다 오는 것.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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