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마침내 대통령은…'

'경우(境遇)의 수(數)'라는 게 있다. 유한집합론의 용어다. 딱딱하고 귀에도 설익지만 월드컵 같은 빅 게임을 연상하면 한결 이해가 쉽다. 우리 팀이 자력으로 올라가지 못한다고 치자. 상대팀의 전적에 따른 승점과 비교해 이럴 경우는 16강이 가능하고 저럴 경우는 탈락이라 셈하여 질 때 경우에 따라 '16강'도 '탈락'도 가능한 수가 바로 경우의 수다.

빅 게임에서 경우의 수는 산정 그 자체로 재미가 있다. 나이지리아가 미국을 깨고 호주가 일본을 3점 차로 이긴다면 비록 브라질에 역전패한 우리가 준결승은 가능하다든가 북한이 미국에는 패해도 일본을 이길 경우 남북한은 한판 승부를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 등이다. 물론 이것은 가상 대진표에 의한 경우의 수지만 꼭히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게 현실이다. 지금 우리는 누구나 현실 속에 살고 있고 현실 속에는 반드시 경우의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경우의 수를 피할 수 있는 경우가 현실에는 없다.

일본이나 미국의 고위 관료들이 한반도를 향해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입을 열었고 때로는 참견에 가깝다. 오죽하면 대통령이나 장관이 자제를 요청했을까. 미국은 그래도 "유념하겠다"며 체면을 세워 줬는데 일본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핵 선언으로 북한의 으름장은 식량이나 비료 포대에 아무리 담아내도 역부족이다.

북한 최고 통치자를 만난 장관은 무슨 선물 보따리를 받았기에 보따리 푸는 모양새가 그토록 진지하고 감개무량일까. 우리 사회의 주류는 이미 교체 됐고 일정한 값이 없는 그들의 역량은 어느 틈에 중심까지 뭉개버렸다. 미래를 강조하면서 과거에 매달려온 386 정권. 이런 마당에서 그런 진지와 그런 감개가 먹혀드니 그 자체로 가관이다.

참 어수선한 시대요 시절이다. 어처구니 없고 기막힌 장병들의 참사가 오금을 못 추게 만든다. 장군 잡던 여경. 첫 여성 경찰청장. 두 여성 경찰 스타의 추락을 보는 국민들은 이럴 때 정말 난감하다. 풀리지도 않을 행담도 사건과 러시아 유전 개발 사업을 푼답시고 풀었지만 풀린 게 있는가. 여기에 부동산 바람은 또 오죽 했으면. 한림대 전상인 교수(사회학)는 이런 시대를 '폐쇄성과 낙후성, 반지성주의, 저(低)도덕성과 비(非)진정성'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걸맞는 경우의 수는 어떤 것이 있을까. 차라리 무진장이다. 재미있고 재기 마저 번뜩인다. 일테면 '마침내 대통령은…'하고 '…'에 경우의 수를 대입해 보면 별의별 경우가 등장한다. 예를 들어보자. '마침내 대통령은 화가 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결국 대국민 담화문을 내고 말았다'고 해도 되고 '마침내 대통령은 복수차관제 도입에 발맞춰 차관 여럿을 임명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고 해도 괜찮다. '마침내 대통령은 이제 신물나는 개혁을 하지 말자고 했다'고 해도 틀린 문장일 수 없다. '마침내 대통령은 국방장관의 사표 수리를…'하고 또 다른 경우의 수를 위해 공간을 비워둬도 그런 대로 멋있다.

아프리카나 남미 혹은 동구권이라면 '마침내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나다'라는 표제가 붙은 신문도 발견할 수 있다. 방송에서는 '마침내 대통령은 군중의 압력에 굴복해…'라며 떠들어대는 소리도 예사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최대한의 상상력을 동원해 '…'에 알맞은 말을 찾아 넣는 재미. 그러나 경우의 수는 이처럼 마냥 자유롭기만 할까. 재미있는 말을 넣기만 하면 그만일까. 아니다. 그건 재미고 진짜 경우의 수는 흔히 말하듯이 경우가 발라야 하듯 바른 말이어야 한다. 여기에 경우의 수의 또 다른 진미가 있다.

그 진미를 맛보기 위해서는 경우의 수에 바짝 긴장을 해야한다. 그렇지 않고는 냉정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다행스럽게 비켜갈 수가 없다. 어영부영 과거에 매달려서도 안 된다. "과거는 미래를 말해 줄 수 없다"는 하버드대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단 하루의 화재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1천년 동안 축적됐던 지식을 불태웠고 뉴질랜드의 마지막 남은 모아(moa)새는 인간 사냥꾼의 단 한 발의 총탄 때문에 수 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증거가 사라졌다"며 아쉬워하질 않았는가. 기술적 진보와 도덕적 진보의 불일치가 엄청난 불안정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 '진보'때문에 말이다.

지금, 백두산에는 야생화가 환상적이라고 한다. 노랑만병초 꽃, 운이 좋으면 개불알꽃도 볼 수 있고 보랏색 제비붓꽃 등 1천800여 종의 야생화가 사람들의 입을 가만둘 리 없다. 차라리 이런 경우의 수는 어떨까. '마침내 대통령은 머리를 식히려 백두산에 올라 야생화에 취해 말을 많이 했다'고. 왜 하필 백두산이냐고? 사학자 문일평이 '영주만필(永晝漫筆)'에서 "백두산의 위대는 평범한데 있다"고 했듯이 그 평범을 따랐으면 해서다. 평범이 진정 바른 경우일 테니까.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