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문어 몰라? 전국에서 잡히는 문어의 3분의 1을 안동을 포함한 경북 북부권에서 소비해. 안동만큼 문어가 좋은 곳은 어디에도 없어."
안동은 희한한 도시이다. 경북 북부 내륙도시이면서도 각종 어물이 유명하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안동 간고등어'가 그렇고, '안동 문어'가 그렇다.
안동에서도 문어할매로 소문난 '탁씨 할매'는 꽃다운 20대부터 팔순을 바라보는 오늘날까지 반백 년을 문어를 만지며 살아왔다. 자식보다도, 남편보다도 문어와 더 오래 함께한 셈이다.
◇ 안동에서 탁씨 할매 모르면 간첩?
안동 중앙시장에서 포항 수산 '탁씨 할매'를 모르면 간첩(?)이다. 올해로 희수(喜壽'77세)인 '탁씨 할매' 강차순씨는 한때 영덕 죽변 등 동해안을 휩쓸고 다니며 문어를 확보, 경북 북부 각지로 공급하면서 살았다.
한창 시절, 탁씨 할매가 공판장에 나타나면 어물값이 갑자기 올라간다. 시원하고 단순한 성격에 물건만 좋으면 한두 푼 깎지 않고, 그대로 실어라고 하니 어시장에서 탁씨 할매보다 더 인기인 사람은 없었다. 안동에 왜 문어가 유명할까.
"글쎄, 안동에서는 왜 집안 큰일에 문어를 많이 쓰는지는 나는 모르제. 하여튼 그 덕분에 나는 애들 잘 키우고 살았구먼."
◇ 잔치에 문어 없으면 잘했다는 소리 못 듣죠.
"동해안에서 문어가 많이 잡히고, 또 생선 중에서 문어만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없어요. 뼈도 없고, 경상도 말로 오지지요. 의례음식에 올라가는 조기 등 다른 생선이 서해안 혹은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데 반해서 이 지역에는 문어가 더 주목받았던 것 같아요. 잔치나 회갑, 기제사, 명절제사, 상례 등에 문어를 쓰는 현상은 안동뿐만 아니라 강원도에서 포항까지 해변을 따라 내려오면서 쭉 그런 현상이 보입니다."
안동대 민속학과 배영동 교수는 그렇게 분석한다. 그래서 안동에서는 문어가 없으면 잔치를 잘했다는 소리를 못 듣는다.
배 교수가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안동의 선비문화와 연결된다. 문어(文魚)의 文자가 선비 문화와 연관된다는 것이다. 선비가 많은 안동지방에서는 여름철 운동도 별로 않고 들어앉아 책만 읽는 선비들이 무더위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아서 개고기를 많이 먹었다. 그래서 개고기를 선비고기 즉 儒肉이라고 불렀는데, 개고기에 유자가 붙은 것이나 문어의 文자나 상당히 유사성이 있다.
◇ 문어는 강아지 정도의 지능 있다고 알려져
실제 문어는 강아지 정도의 지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에서는 문어를 잘게 다져 썰어넣은 스낵 타코야키가 큰 인기이다. 또 타우린이 많아 시력회복에 도움이 되며, 동맥경화와 심장마비를 예방한다고도 알려져 있다.
"문어는 버릴 게 하나도 없어. 보통 머리라고 부르는 둥그런 원형주머니는 내장이 들어있는 몸통인데, 싱싱한 문어는 내장 맛도 기가 막혀. 먹물 빼놓고는 다 먹어."
'탁씨 할매'는 지난 50년간 매일같이 생문어를 들여왔다. "최고로 많이 취급할 때는 하루에 1천㎏까지 거래했어." 살아있는 문어를 내려놓으면, 온 가게는 기어다니는 문어들로 넘쳐났다. 금방 잡은 문어를 설설 끓는 가마솥 물에 삶아놓으면 댓바람에 팔려나간다.
◇ 문어 꼬지를 아십니까.
"안동에서 문어가 가장 많이 나갈 때는 음력 10월, 시사 때야. 그때는 문어를 사려는 남정네들이 줄을 서지. 전국에서 가장 좋은 문어는 안동에 있을 걸. 안동에 와야 진짜 좋은 문어 만날 수 있지. 여기서는 제사든, 혼사든, 시사든, 환갑이든, 생일상이든 문어를 올리지 않으면 일이 안 된다니까. 매일 꾸준하게 소비되니, 좋은 놈이 들어오지. 얼마나 굵고 좋은 문어를 썼느냐에 따라 큰일을 잘 치렀는지, 못 치렀는지 판가름나지."
안동에서는 큰일에 문어꼬지를 쓴다. "아이 팔뚝보다 더 굵은 문어 발을 몇 개 사서 돔배기처럼 톰방톰방 잘라 가른 뒤 꼬지를 끼우는 거야. 어느 지방에도 이런 음식은 없어, 안동에만 있어."
워낙 문어를 많이 먹는 통에 화장실 바닥이 벌겋다고 할 정도이다. "문어는 잘 삶아야 제맛이 나. 그럴려면 지(원래) 간(짠맛)을 잘 살려야제."
◇ "요즘 뷔페에 가면 전부 수입산 문어야. 싼 문어 맛보고, 문어 맛없다고 그러면 잘못 아는 거지. 그건 문어도 아니야. 오버단추(흡착판)가 톡톡 튀는 국산 문어 한번 먹어보라고. 그 자리서 먹고, 또 선물로 사가고 그러제."
탁씨 할매는 비싸도 동해안에서 나는 국산 참문어를 쓴다. 싱싱한 문어가 있으면 값을 묻기 전에 트럭에 실었다.
"재료가 좋아야 음식맛이 나잖아. 조금 덜 벌더라고, 좋은 어물 대줄려고 힘썼는데, 그게 바로 성공의 밑거름이었어."
탁씨 할매는 요즘 '안동 문어' 맛을 안 도시 소비자들이 전화로 주문하면 택배로 부쳐준다. 문어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탁씨 할매는 요즘 일선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고, 아들 손자에게 '어물도가'를 물려줬다.
'가족 3대 경영'에 들어선 탁씨 할매는 또 다른 꿈을 갖고 있다. "뭐, 안동 간고등어만 전국 브랜드화되라는 법 있어. 안동 문어도 상품화할 만하지…."
글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사진 정재호 편집위원 jhchu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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