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알려진곳 숨은 이야기-예천군 서본리 삼익수도

고려시대 바위 뚫어 만든 도수터널

고려시대에도 땅속 바위를 뚫어 만든 도수터널이 있었다. 예천군 서본리 속칭 굴모리에 있는 도수로 삼익수도(三益隧道)가 그것.

예천 서본리 오거리 모퉁이 조금 못 미치는 산비탈 아래 사방 2m 깊이로 움푹 파인 구덩이가 있다. 무성한 잡초를 헤집고 살펴보니 남쪽 측면에 높이는 사람 키 정도, 너비는 양팔을 펼쳐 닿을 정도 크기의 나무문이 보인다.

삼익수도의 입구다. 열어보니 입구 둘레는 정확히 2.5m다. 10m정도는 내부 형상이 보이지만 그 너머는 짙은 어둠 때문에 분간이 되지 않는다. 예천군 실측자료에 따르면 이 암굴의 길이는 남쪽 서정평야(들) 방향으로 98.5m다.

개설된 시기는 고려 무신정권(1170년경)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순전을 저술한 예천 출신 문호 서하(西河) 임춘(林椿)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규장각에 소장된 정조본 예천군읍지에 남아 있다.

'임춘은 고려인이다.' '바위를 뚫어 굴을 파고 물을 들에 댔으니 사람들이 임춘천(林椿遷)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1939년 예천 호명 출신 이동락이 쓴 예천군지 최초 본에도 비슷한 기록이 전해진다.

근세에 만들어져 더 자세히 기술돼 있는 예천촌락사에 따르면 예천읍 서쪽 큰 길이 현산(峴山) 높은 곳으로 나 있어 매우 불편했는데 고려 중대의 임춘이 벼랑을 깎아 길을 내고 암석을 뚫어 굴을 만들어 물길을 텄다는 것.

이 물길로 서정(西亭)들의 몽리를 도왔으므로 이곳을 임춘천이라 하고 현재 서본리의 굴 모롱이를 가리킨다. 또 1919년 굴을 확장해 삼익수도라 하였다.

늪지대이던 남읍면과 동읍면·서읍면의 배수를 원활히 하고 교통편의를 도왔으며 서정평야의 관개를 하는 3가지 혜택을 주었기 때문.

예천 향토사학자인 장병창씨는 "임춘이 암굴을 어떤 방식으로 뚫었는지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무척 궁금하고 아쉽지만 그가 굴을 뚫었고 그 굴을 1919년에 확장한 것은 사서에 기록된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1919년 확장공사를 한 이유는 굴이 좁아 물빠짐이 나빴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공사를 주도한 군수 이익범과 면장 장승환의 공로를 기리는 송덕비가 굴 입구에 지금도 남아 있다.

예천군은 삼익수도가 비록 기능을 다해 쓰이지 않지만 무척 유익했던데다 희소성과 고려시대 당시로는 불가사의한 암굴공사 등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입구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주변을 소공원으로 가꾸고 있다.

예천군 정인호 기획실장은 "삼익수도는 예천읍내 배수관문 역할은 물론이고 역사성을 담은 유명세로 보존가치가 높아 도수로 폐쇄 이후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천·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예천읍 서본리 굴머리에서 남쪽 서정들 방향으로 98m가량 뚫려 있는 삼익수도는 수백 년간 관개용수와 하·우수 통로로 사용돼 왔다.(수도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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