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러브레터

'오 갱끼 데스까? 와따시와 갱끼데스'는 이 영화 속의 유명한 대사로, 한동안 젊은이들 사이에 회자됐다.

와타나베 히로꼬는 애인 이츠키를 등반사고로 잃었다. 3년이 흘렀으나 그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녀는 이츠키의 졸업앨범에서 옛 주소를 발견하고, 수신자 불명일 편지를 쓴다. 그러나 놀랍게도 답장이 왔다. 이츠키에게서.

이름이 같아서 많은 곤혹을 치렀다는 이츠키라는 여자는 죽은 이츠키와 중학교 동창이었다. 히로꼬가 찾아낸 주소는 동명이인인 이츠키(여)의 것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두 사람이 편지를 통해 죽은 이츠키에 대한 기억을 퍼즐조각 맞추듯 더듬어가는 과정이 마치 정신치료와 흡사하다. 정신치료란 치료자와 환자가 대화를 통해 과거 기억을 떠올려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히로꼬는 소년 이츠키가 어떠했는지, 그는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바심이 난다. 이츠키(여)는 우연히 날아든 한통의 편지를 계기로, 학창 시절로 돌아가 회상에 몰두한다.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이 적힌 수많은 도서대출 카드, 자전거 주차장의 기다림, 자전거 페달을 돌려 불을 밝히던 장면, 창가에 기대어 책을 읽던 이츠키, 체육대회 때의 헤프닝...

수줍고 내성적이었던 이츠키(남)는 예쁜 이츠키(여)를 좋아했다. 그러나 변변한 프로포즈 한번 못하고, 그녀 주변을 맴돌며 우연을 가장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낼 뿐이었다. 이츠키(여)는 24살이 되도록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첫사랑은 그렇게 덮인 채로 10년이 흘렀다.

이츠키(여)는 과거를 더듬을수록 애틋한 감정이 솟아났다. 그때는 왜 그리도 우둔했느지, 이츠키(남)가 남긴 사랑의 흔적을 더듬으며 열병을 앓는다. 이츠키(남)가 떠날 당시의 가족 갈등이 함께 떠오르면서, 현재 상황에서 함께 해결되어, 열병은 가족애로 치료된다. 이츠키는 한층 안정되고 편안한 마음이 되어 일상으로 복귀한다.

히로꼬는 이츠키(여)를 빼닮았다. 히로꼬에게 첫 눈에 반한 이츠키(남)는 과거의 여학생을 잊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영화에서는 히로꼬와 이츠키는 1인 2역을 한다. 히로꼬는 추억의 여자와 닮았다는 이유로 자신을 선택한 연인을 원망하며, 질투감에 휩싸인다. 이츠키가 조난사 당한 눈 덮인 산에 올라가 그동안의 그리움과 원망을 터뜨린다.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겡기데스 (잘 지내나요? 나도 잘 지내고 있어요.)'라며 애도의 감정, 그리움, 연인에 대한 원망과 질투의 감정이 범벅이 되어 터져 나온다. 그 후 히로꼬는 감정을 정리하고 돌아설 수 있었다.

이 장면은 정신치료의 제반응(abreaction)과 유사하다. 제반응이란 신경증을 일으킨 과거의 상황을 감정적으로 재 경험함으로써 불안을 완화시키는 기법이다. 억압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쌓였던 감정이 발산됨으로써 치료 효과를 보는 것이다.

한통의 러브 레터를 통해 두 여자의 상처가 치료되는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윌리엄 제임스는 '기억이란 시간이 과거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그냥 일반적인 느낌으로, 시간상 역 추적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시간 창고에 갇혀있을 해결되지 못한 수많은 과거 경험이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며, 막연한 불안과 우울감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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