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복 60주년 문화예술 60년-(3)트로아 조 패션 디자이너

땀으로 이룬 '성공가도'…한국 패션계 맏언니

트로아 조(Troa Cho)는 1960년대 이래 한국 패션사에서 한 축을 담당한 인물이다. 본명은 조영자(趙英子·66). 전남 순천 출생인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제 손으로 옷을 만들었다. 엄마가 외국인 여선교사의 옷을 만들어주고 남긴 고급 모헤어 옷감을 몰래 가져다가 동생의 멜빵바지를 만들었던 것. 해방 공간의 와중에서 옷이라곤 신생활장려추진위원회가 제정한 간단복(동정과 깃이 없는 적삼과 통치마)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카키색(국방색) 군복이 고작이던 시절, 열 살 남짓 꼬마 아가씨가 디자이너로 비공식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여자 옷도 양복점에서 만들었어요. 1950년대 들어서야 서울 명동을 중심으로 양장점이란 게 생기기 시작했지요."

숭의여고를 졸업하고 양장계의 원로 최경자 여사가 운영하던 국제복장학원에 다니기도 했던 트로아는 뉴욕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2년간 수학한 뒤 귀국, 명동 사보이 호텔 옆에 자신의 부티크를 열었다. 스물네 살 때인 1963년의 일이었다. 평생 멈출 줄 모르고 달려온 '성공가도'의 시발이었다.

"성균관대 정외과에 합격했는데 오빠들이 여자가 무슨 정치냐고 못 가게 하잖아요. 아예 디자이너로 나가자고 결심했죠." 1960년대 패션계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다. 디자이너들이 다수 등장해 개성을 과시했다. 트로아 조라는 이름은 그 중에서도 발군이었다. 많은 유명 여성들이 그의 부티크를 찾았고, 그때 맺어진 인연들은 오늘날에도 소중한 활력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국내의 명성에 만족할 수 없었다.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1980년 뉴욕으로 날아간다. "한 2개월 고생해서 자리를 잡아놓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일할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그게 그만 9년이 되고 말았어요."

9년 동안 트로아는 단 한 번도 서울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뉴욕에서의 일이 너무 잘됐기 때문. 매디슨 애버뉴 66번지 브라운스톤 빌딩 1층에 매장을 낸 그는 그만의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생각보다 손쉽게 성공을 거뒀다.

"요즘 신경 쓰는 일이요? 신소재 개발이죠. 우리 고유의 소재를 진에 접목시켜 '꿈의 원단'을 만드는 게 목표이지요. 과히 멀지 않았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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