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경모세포종을 앓고 있는 김성현양

병원에서 약을 타고 돌아오는 길, 아이가 등 뒤에서 자꾸만 늘어진다. 잠이 든 것일까. 설마. 축 처지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돌려본다. 벌써 몇 번째인가 섬뜩한 느낌이 든다. 아이는 업을 때마다 가벼워진다. 자꾸 가벼워지면 날아가버릴까. 등뒤에 업힌 아이는 잠에 빠져들지 않아도 엄마 목을 꽉 여며쥘 여력조차 없는 것 같다. 허벅지로 엄마를 감싸 안을 작은 힘마저도.

석달 전, 널 데리고 갔던 병원에선 그냥 감기일 뿐이랬지. 열이 좀 있지만 분명 괜찮아질 거랬어. 또 며칠 뒤 배가 아프다며 배를 꼭 감싸쥐고 누워있던 너를 데리고 동네 소아과에 갔을 땐 '장염'이랬단다. 코피도 막 났는데…. 익힌 것만 먹이면 낫는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 난 믿고 싶었단다 아가야. 너가 큰 병이 아닌데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꼭 그러리라 믿고 싶어했단다. 근데 아가야, 현실은 좀더 냉정했지. 다 거짓말이었어. 거짓말들. 너의 뱃속엔 손가락보다 큰 종양이 자라 있었고 그 몹쓸 것이 신장을 누르고 있었단다. 그래서 열이 났고 오줌을 못 눠 배가 아픈 거였대. 감기라고만 믿은 엄마가 밉니? 장염이라며 뜨거운 물만 잔뜩 먹인 못난 엄마가 밉지? 엄마는 너가 정상이 아니란걸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아. 너가 큰병을 앓고 있더라도 작은 것이라고 믿고싶었던 것 같아. 그래야만 했거든.

내 딸 김성현(6·여)은 신경모세포종 4기이다. 교감신경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 거의 말기 상태에 있다. 기침을 해대고 호흡곤란을 호소했지만 감기일 뿐이라고 엄살피우지 말라고 했다. 모두 4차례 항암치료를 거쳐야 하는데 이제 두 번 했다. 종양이 너무 커서 항암제로 크기를 줄인 뒤 제거 수술을 해야 한단다. 방사선치료도 끝나면 자기 골수를 이식하면 된다고 한다. 말이 쉽다. 자기 골수를 빼서 다시 심는데만 2천만 원이 넘게 든다.

아이 아빠는 돈을 벌겠다며 떠났다. 2년 전, 남편이 운영하던 안경테 제조공장은 부도가 났다. 나는 영문모를 빚더미에 올랐다. 남편 보증을 내가 섰고, 내가 카드대출을 받았고, 내가 카드론에다가 현금서비스를 받았다는 사실을 내가 왜 몰랐을까. 지금 남편은 알고 있다. 자기 둘째 딸이 몹쓸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남편은 알고 있다. 아무리 벌어도 빚 갚기는 여의치 않을 것이며 아이의 병원비를 댈 여력이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는 내게 연락하지 않는다.

아이의 깊은 병을 믿지 않았던 건 그래서였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남편이 집을 나간 동안 중·고생 시험지를 배달했다. 하지만 수금이 여의치 않은 집은 내 월급으로 메워냈고, 점차 메우는 금액이 월급보다 많아져 그만뒀다. 아이가 아프기까지 벽지 도배일을 배웠다.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0만 원 단칸방으로 옮겼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됐고, 의료보호 1종이 됐으며, 성당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금까지 두 차례 항암치료로 아이의 목과 가슴에 있던 종양이 거의 사라졌다. 희망이 움튼다. "엄마, 머리카락도 자꾸 빠지면 새 이빨처럼 더 좋은 거 나는 거지? 옷은 이쁜데 머리가 안 이뻐." 아이 앞에서 울 수 있는 염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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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신경모세포종을 앓고 있는 김성현(6·여)양을 엄마 남정미(34)씨가 꼭 안아주고 있다.

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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