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가정의 교육 기능 회복을 위해

지난 1월 개봉된 영화 '말아톤'을 보면 자녀의 성장과 교육에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난다. 다섯 살 수준에서 지능의 발달이 멈춰버린 아이에게 달리는 방법을 가르치고 달려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하는 최고의 선생님은 어머니였다. 자식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잘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지도자는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굳이 영화가 아니라도 우리 주위에는 이런 강인하고 현명한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몇 해 전 대구 교육청의 학부모 교육에서 들은 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내내 가슴에 남는다. 아이가 세 돌이 될 무렵 소아자폐증 진단을 받은 이 어머니는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자 수영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근육을 발달시키고 균형 감각을 길러주기 위해서였다. 물을 두려워하는 아이를 2년 가까이 끌어안고 살을 맞대며 함께 물에 뜨는 것으로 사랑과 용기를 가르친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아이는 기대를 넘어 수영 선수가 됐다. 수영을 시작한지 7년이 되던 해 정신지체 장애아 수영 대회에서 메달을 따기도 한 그는 아시안 게임과 세계 대회에 국가 대표로 선발되기 위해 맹연습 중이라고 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뉘라서 다를까마는 요즘 학부모들을 보면 자녀 교육 때문에 힘들어 하면서도 정작 부모의 역할은 손 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학부모 개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편향된 교육 정책과 일그러진 제도, 주먹구구 시스템이 조장한 결과다. 장애 자녀에게 달리기를 가르치는 엄마보다 더 헉헉거리고, 함께 수영하는 엄마보다 훨씬 힘들게 만드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매일신문사가 마련한 'NIE·대입논술 전문가 특강'에 참가한 600명 가까운 학부모들을 지켜보는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참가 신청을 하고 3시간이 넘는 강연을 내내 진지하게 듣는 모습은 자녀 교육에 열심인 부모들의 전형이었다. 그렇지만 강사들은 한결같이 '먼저 공부하라', '함께 감동하라', '앞서서 이끌어라' 등과 같이 당연한(?) 부모의 역할을 강조했다. 열심인 학부모들조차 자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어찌 해야 할 지 잘 모르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었다.

강연 후 받은 설문조사지에서 많은 학부모들이 더 깊이 있는 강의와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기대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꼭, 반드시, 제발…' 등과 같이 간절한 표현을 쓴 글도 적잖았다. 매일신문사가 이번 특강의 후속 프로그램으로 준비하고 있는 'NIE·독서·논술 전문 강좌' 예비 신청도 300명을 넘어 그 같은 심정을 반영했다. 행사를 진행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반가운 결과지만, 가정의 교육 기능이 상실된 오늘의 우리 상황에서 비롯됐다는 측면에선 씁쓸한 일이었다.

학생들의 정신적·육체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가정과 학교의 소통을 가로막고, 사이비 전문가와 떠버리 학원으로 내모는 교육 제도를 깨뜨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가정과 사회가 발걸음을 같이 하는 것이다. 학교와 사회를 연결하는 주체로서 가정의 역할을 명확히 정립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 신문사를 비롯한 사회 기구들이 올바른 기능을 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에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낀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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