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죄의식' 때문에 '돈'으로 해결 말라

맞벌이 부부 자녀 교육

맞벌이 부부 특히 일하는 엄마는 직장과 자녀 교육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을 느껴야 하고 남다른 고민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맞벌이 부부는 보다 많은 시간을 자녀와 함께 하지 못하는 데 대해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녀 양육의 많은 부분을 남에게 맡기고 돈으로 많은 부분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돈과 남의 손으로 양육 문제를 해결하는 사이에 자녀는 부모의 기대와 점점 멀어지게 된다. 맞벌이는 이제 시대의 대세. 어떻게 하면 맞벌이와 자녀 교육을 양립시킬 수 있을까.

▶ 사례 1

A씨는 중3과 초등 6학년인 아들과 딸을 두고 있는 건축 관련 전문직 여성이다.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기 때문에 자녀들의 취학 전에는 숙식하는 유모를 고용해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저녁 시간에는 아이들끼리 있게 했다. 그러면서 A씨는 주말에는 철저하게 아이와 함께 하며 공공 도서관이나 박물관 같은 데를 많이 다녔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같이 산행을 했다. 자연 속에서 한 주일을 돌이켜보며 잘 한 일은 아낌없이 칭찬해 주고 미흡한 점은 진정으로 걱정하며 도와주려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스스로 자기의 일을 계획하고 관리하며 성취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인가를 체득하게 했다. 아이의 모든 행동을 의심하지 않고 자율성을 존중해 주고 믿어 준 것이 스스로 의젓하게 행동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갖게 했다. 두 아이 모두 공부는 최상위권이다.

▶ 사례 2

D씨는 고2와 중3의 두 아들을 두고 교직에 근무하는 전문직 여성이다. 아이 둘 다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했다. D씨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매사에 완벽할 것을 요구했다.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모든 것을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엄마로부터 인정을 못 받을까봐 늘 두려워했다.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할 때도 엄마에게 먼저 물어 보았다. 엄마의 판단은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엄마는 신이 나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큰 아이는 중3 때부터 독서실 출입을 시작했고 엄마의 눈을 속이기 시작했다. 점점 성적도 떨어지면서 생활의 활력도 잃었고 지금은 컴퓨터 게임에 탐닉하며 무기력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엄마를 두려워하지 않고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둘째 아이는 이런 형의 모습을 보면서 혼란스러워한다. D씨는 아이의 모든 생활을 엄마가 통제하며 스스로 자기 생활을 꾸려가도록 키우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 자기주도형 생활습관이 열쇠

한국사회에서 부모는 자기에게 주어진 수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하는 종교적 순교자가 돼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자식을 가지는 순간 죄인이 된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 젊은 부부들은 자신의 삶이 너무 힘들고 고단하기 때문에 자식 낳기를 두려워하고, 낳은 아이는 남보다 잘 길러야 한다는 의무감과 강박관념에 짓눌리고 있다.

▶ 부모와 자녀의 현실

중·고등학교 학생이 있는 중·상류층 가정 전업 주부의 하루는 대개 이렇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승용차로 등교시킨다. 낮 동안에 집안 일을 대충 처리하고 아이가 하교할 무렵엔 학교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를 태워 학원에 데려다 준다. 아이가 둘 일 때는 한 아이가 수업을 하는 동안 다른 아이의 과외 스케줄을 수행한다. 시간이 남으면 첫째 아이의 학원 앞에서 기다린다. 아이를 태우고는 둘째 아이 학원 앞에서 또 기다린다. 집에 와서 저녁밥을 먹는다. 저녁 식사 이후에도 과외가 있기 때문에 자정 무렵이라야 하루 일정이 끝나게 된다. 대개의 경우 엄마는 단 하루도 자기 시간이 없으며, 자녀는 단 한 순간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이 없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중간·기말 시험이 다가온다. 온 가족이 전쟁을 치르듯 야단법석을 떨지만 기대만큼 결과가 좋지 않는 경우가 많다. 참다못한 엄마가 어느날 아이에게 "난 동창회나 계모임도 안 나가고 모든 것을 너에게 바쳤는데 이것도 성적이라고…"라며 불만을 터뜨린다. 아이는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나요. 나도 엄마가 그러는 것이 싫어요"라고 대꾸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버린다. 엄마는 허탈하다. 아이 주변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데도 아이는 엄마의 노고를 인정해 주지 않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엄마도 엄마가 추구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전업 주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행복과 자기 발전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하는 부모를 볼 때 자녀는 존경심을 갖는다. 맞벌이 부부는 이점에서 대단히 유리하다.

▶ 일관성을 가져라

학창시절을 생각해 보자. '독사'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이 꼭 한둘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선생님들은 무섭긴 하지만 학생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은 별로 없다. 언제나 한결같은 기준에 따라 학생들을 대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어 조심하면 혼날 일이 없다. 그러나 때와 장소, 분위기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선생님은 대책이 없다.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도 마찬가지다. 맞벌이 부부일수록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부모가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자녀는 상황에 따라 거짓말을 하고 변명하게 된다.

▶ 이벤트를 만들어라

현대는 탈 신화의 시대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축제가 없는 시대이다. 바깥 사회가 메마른 만큼 많은 맞벌이 가정에도 공동의 화제나 이벤트가 없다. 물리적, 정서적인 공감이 없는 집은 가정이라고 할 수가 없다. 같이 책을 읽고, 영화나 음악회 등에 가족이 함께 하며 진한 감동을 공유하는 경험이 많을수록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신뢰하게 된다. 졸업이나 입학 등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가족 여행 같은 이벤트성 행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녀와 함께 보내느냐보다는 짧지만 가슴 뭉클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 자기주도형 학습습관을 길러주라

'말을 냇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맞벌이 부부는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갖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허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믿을 만한 사람을 고용해도 소용이 없다. 저학년 때, 가능하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스스로 계획을 세워 실천하고 평가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습관이 형성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아이를 믿어주고 끊임없이 칭찬하고 격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계획한 바를 스스로 성취했을 때는 아낌없이 칭찬을 해 주어야 한다. 칭찬과 격려는 천재를 만드는 최고의 비법이고 자기주도형 학습습관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사진: 자녀 스스로 공부와 생활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자기주도형 습관은 어려서부터 들여줘야 한다. 학원이나 과외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맞벌이 부부에게는 더욱 이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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