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 시평-국정원을 없앨 것인가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과거 군부독재 시절엔 권력이 '총칼'에서 나왔다. 끌고 가서 두들겨 패는 데는 말을 안 들을 도리가 없다. '연줄'도 권력이다. 힘있는 사람이랑 친하면 덩달아 힘이 생긴다. 그래서'호가호위(狐假虎威)'란 말이 생겼다. 예나 지금이나 '돈'은 가장 큰 권력의 기반이다. 그래서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 속담이 있다. 권력은 인간의 '매력'에서도 나온다. '그대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는 노래가사처럼 그 사람의 인품에, 매력에 반해서 꼼짝 못한다면 그것도 힘이요 권력이다.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나서 이러한 권력의 기반(基盤)들이 상당히 다양하고 고급스러워졌다. 특히 '지식'이나 '정보'에 바탕을 둔 권력이 주목을 받고 있다.

흔히 직장에서 컴퓨터 기기 관련 결재가 올라오면 결재권자는 매우 곤혹스럽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거 꼭 사야 하는 거야? 왜 이렇게 비싸?'하고 반항을 해보지만 종내 결재를 하고 만다. '잘 알면 니가 해 보라'는 데야 도리가 없다. 아는 것이 바로 힘이다. 이처럼 권력은 '지식'에서도 나온다.

가장 고급스런 권력은 '정보'에서 나온다. 드라마 '제5공화국'을 보라. 노태우씨가 치열한 견제와 암투속에 살아남아 대통령이 되기까지 측근 참모들이 물어다주는 '살아 있는 생생한' 정보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한 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정보의 힘은 이렇게 막강하다.

살아 있는 생생한 정보를 얻는 데는 도청(盜聽)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도청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바로 그 도청 때문에 나라가 온통 난리다.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당과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는 야당의 대립속에, 정치적 음모론이 난무하고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참에 도청의 업보를 떠안은 국가정보원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더니, 급기야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까지 벌어졌다. 국정원 요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국가기관의 체면도 말씀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 이런 말을 했다. "저는 국정원 보고를 받지 않겠습니다." 국민들은 이 말의 함의(含意)를 잘 모른다. 노 대통령은 어두운 밀실정치가 싫다. 양지바른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정보기관의 횡포를 통한 과거의 모든 비리로부터 우리 사회를 해방시키겠다는 신념에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전 '도올'의 지적처럼 국정원은 과거의 일부 부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지탱하는 모든 국내'외의 정보를 관장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생각해 보라! 대통령이 직접 보고를 받지 않는다면 어느 정보요원이 세계를 무대로 사선을 넘나들며 정보수집에 나서겠는가? 고작 대통령 주변 참모들 정도에게 보고하기 위해 과연 국정원이 목숨을 걸까?

대통령이 국정원 보고를 받지 않는 것은 도덕적으로 숭고한 일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제스처는 우리나라 정보체계 전체기능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한마디로 나라가 유치해지고 대통령 자신의 정보체계가 단조로워지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무슨 죄가 있는가! 죄는 국정원에 도청을 지시하고 권력의 시녀로 만들어간 그네들에게 있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지구촌 온 나라들이 정보전쟁의 나팔을 불어대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동'서양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가정보기관의 조직과 예산이 축소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매우 순진한 사람이다.

이제 우리도 김승규 원장 스스로의 다짐처럼 국정원이 국익을 위한 순수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할리우드 영화의 그 멋진 모습처럼 국익을 지키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조직으로 더욱 알차게 만들어야 한다.

최근 국정원의 시련을 민주화의 대가로 당연시하기엔 오늘날 국가사회의 기능방식은 너무도 '콤플렉스'하다.

노병수 경북외국어테크노대학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