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도착하는 날, 공항으로 픽업을 나왔던 만공 스님. 이곳에서 누구에게 의지하랴. 그동안의 신세도 미안한 일이지만 '왕빈대' 되기로 작정하고 바라나시역에서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사르나트로 향한다. 사르나트는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후 처음으로 설법을 편 곳으로 불교 4대 성지 중의 하나다.
이곳 한국 절인 녹야원에서 만난 만공 스님. 공부하러 온 인연으로 녹야원을 꾸린 지 벌써 5년째. 우리 같은 배낭객에겐 자상한 아버지이고 재밌는 오빠이며 엄한 선생이기도 하다. 델리에서 신세를 만만찮게 졌지만 여전히 나를 대하는 스님의 모습은 따스하기만 하다.
새벽에 나를 마중하러 역으로 나갔다 허탕치고 돌아오는 스님을 만났다. "혼자서도 잘 찾아왔네. 역 주변은 한번 살펴보지 그랬어"라고 기특해한다. 무거운 배낭 내려놓고 녹음 우거진 싱그러운 풀밭에서 스님과 차 한잔을 하며 여행의 고단함을 씻어버렸다.
사르나트는 작은 동네라 아침에 우연히 산책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오후에도 만나고 저녁에도 만난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옆에 가서 괜히 집적댔다. 하지만 며칠 지나자 서로 "나마스테(안녕하세요)"라며 오래된 친구처럼 악수를 하고 포옹도 한다. 자연스러운 폼이 그냥 눌러 살아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다.
바라나시 길은 미로다. 우기인 탓에 물이 불어 가트(화장터)가 잠겨버리는 바람에 좁은 골목길을 통하지 않고는 다닐 수가 없다. 물어물어 가트를 찾아가는데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하면 서로 편할 것을 한 번도 모른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결국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찾고보니 아까 돌고 돈 길 바로 옆이었다.
쌓아올린 장작더미 불길 속에 사람의 주검이 보인다. 채 타지 않은 시체들을 나무막대기로 뒤적거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무심하다. '툭'하고 타다 남은 다리 하나가 떨어지자 개가 물어간다. 쫓거나 뭐라는 이도 없다. 얼마 전까지 숨 쉬고 살았을 주검은 그렇게 2시간 남짓한 5.시간에 재가 되어 갠지스강에 뿌려진다. 성스러운 죽음이라고 이해하기엔 그들의 종교는 너무 어렵다. 매캐한 냄새와 날리는 잿가루에 눈이 따가워서인지 주루룩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무심히 흐르는 강물에 마음을 띄워 평온하고 투명한 한나절을 보냈다.
우리나라의 50년대쯤이나 될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월 속에 있는 그들 앞에서 순간 그들이 부러워진다. 쓰레기와 오물이 넘쳐나고 죽을 것 같은 더위와 시체 태우는 냄새 때문에 본능적으로 인상이 찌푸려지는데도 인도인들은 그저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이고 느낌이지만 나는 내가 본 인도인들은 순수하다고 말한다. 너무 가난한 그들 때문에 우는 내 옆에서 그들은 웃는다. 가난함마저 행복해지는 그런 웃음이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나야 하는데 쉽게 발길이 옮겨지지 않는다. '하루만 더 있다갈까. 하루쯤 더 있는다고 큰일 나는 거 아니잖아'라며 속계산을 해보기도 했지만 미련이 자꾸 커질까 두려워 풀었던 배낭을 다시 꾸린다. 스님의 자상한 배려와 이곳에서의 인연들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던가. 혹시 나의 눈물이 보는 이의 마음에 짐이 될까 참았지만 기차안에서 결국 울고 말았다.
노경희(주부)
*후원:고나우여행사(www.gonow.co.kr, 053-428-8000)
사진:1. 보트에서 바라본 '마니까르니까 가트(화장터)'.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삶을 되돌아보며 인도는 철학의 나라가 아니라 철학을 하게 만드는 강이 흐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2.사르나트에서 만난 여동생. 어때요? 웃는 모습이 닮지 않았나요 3. 갠지즈강의 보트 아저씨 4. 인도에서 접한 가장 아름다운 인연은 사르나트 녹야원의 만공스님과의 만남이다 5. 갠지즈강에 디아를 띄우며 소원을 빌었다. 내용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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