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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찰나의 승부 애드리브

연극은 배우들에게 있어서 절제와 약속을 필요로 하는 공연예술이다. 이 말은 공연 시 모든 행위는 연습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들로만 표현되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배우의 대사와 행동은 희곡에 의해 지시되어 있고, 다음엔 연출 방향에 의해서 다시 지시되어 진다. 여기에 배우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반복 연습으로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무시하고 배우가 무대 위에서 자기 기분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라. 그럼 그 공연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지만 연극은 현장예술이다. 그래서 배우는 끊임없는 유혹을 받게 된다. "상황에 맞게 잘만 하면, 공연장을 한번 흔들어서 관객들에게 시선을 끌 수가 있어!" 그래서 결심을 하곤 연습 때에는 하지 않았던 애드리브를 공연 때에는 해 버리는 것이다. 또 이와는 반대로 상황이 어쩔 수 없이 애드리브를 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자면 상대 배우가 대사를 잊어버리거나 훌쩍 뛰어 넘어서 해 버리는 경우. 소품이 있는 장면에서 잘못 가져 나왔거나 아니면 아예 잊어버리고 안 가지고 나온 황당한 경우 등이다.

그렇다면 현재 대구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배우들 중에서 애드리브의 대가는 과연 누구일까? 우선은 박현순 씨가 단연 손꼽힌다고 할 것이다. 그의 유명한 일화를 보면 1995년 인천에서 개최되었던 제13회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뜨거운 땅'이라는 작품에서 상대 배우가 등장하지 않자,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혼자서 일인이역을 다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현재 라디오에서 '달구벌만평'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홍문종 씨도 가히 이에 뒤지지 않는다. 올해 공연된 '피박'이라는 작품에서 상대 배우가 원숭이 흉내를 내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을 천연덕스럽게 따라 하는 바람에 일순간 극장이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여자 배우 중에는 장효진 씨가 두드러져 보이는데, 2004년 '동화 세탁소'라는 작품에서 교복엄마(딸이 죽어서 실성해 버린 역할)라는 역을 표현하면서 때로는 모델처럼 걸어다니며 연기를 해서 웃음 도가니를 만들고, 또 앞 출연자가 의자에 걸려 넘어지는 연기를 하자 이를 똑같이 흉내 내어서 지켜보는 동료들조차 혀를 내두르게 했다.

물론 애드리브가 연기의 척도는 아니다. 더욱이 연극의 생명은 배우 간의 앙상블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상대 배우를 죽이면서까지 하는 애드리브는 독약과 같다. 애드리브도 꼭 필요할 때에 한해서, 전체 공연 진행 사항과 상대 배우에 대한 충분한 고려를 하면서 양념처럼 해야 그 가치가 인정받는 것이다.

극작가 김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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